테크노 미켈란젤로 〈백남준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전자예술의 미켈란젤로' '20세기 후반의 예술에 진정한 충격을 준 거장'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백남준(68)씨에게 현지 언론이 붙여준 찬사다. 미국의 권위있는 월간지 〈아트뉴스〉는 백씨를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 25명'에 선정하기도 했다.

백씨의 최신작에서 초기작에 이르는 예술인생 40년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이 삼성미술관과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공동주최로 서울에서 열린다.

오는 21일~10월 29일 서울 로댕갤러리와 호암갤러리에서 분산 개최되는 〈백남준의 세계(The Worlds of Nam June Paik)〉 전이다. 지난 2~4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렸던 같은 제목의 전시를 서울로 옮기고 몇 점을 추가했다.

백씨는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반신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불굴의 예술혼으로 구겐하임전에서 레이저 신작을 선보였다.

아시아 작가에 대한 첫 전관 초대전인 구겐하임전은 25만여명의 관람객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뉴욕타임즈는 당시 2개면의 특집을 꾸며 "백남준은 TV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히 이해한 다음, 이를 열정적인 예술로 표현한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라고 평했다.

서울전에는 레이저와 비디오 작품 40점과 자료 60여점 등 모두 1백여점이 출품된다.

전시는 ▶비디오 전사(前史)▶비디오 시기▶후기 비디오 시기(레이저 작품)의 주제별로 나눠 열리며 레이저 작품은 주로 로댕갤러리에서, 비디오 작품 등은 호암갤러리에서 보여준다.

로댕갤러리의 하이라이트는 '야곱의 사다리'. 8m 높이의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속을 바닥에서 쏘아올린 코발트색 레이저빛이 거울에 반사되며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설치물이다.

제목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난 천국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차용했다. 물줄기 속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가는 빛줄기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 마련한 구원의 상징물을 연상시킨다.

그 옆에는 천장의 원형 스크린에 레이저 그래픽이 전시되는 '감미로움과 숭고함'이 마련됐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용돌이 패턴 사이로 주역(周易)의 괘(卦)가 흘러나가는 이 작품은 우주의 움직임에 대한 동양적인 원리를 반영한다.

이들 레이저 작품 2편과 스크린 아래에 천장을 향해 설치된 50대의 비디오 모니터는 한데 어울려 '동시변조'라는 전체 작품을 구성한다.

호암갤러리의 하이라이트는 '촛불 프로젝션'과 'TV정원'. 높이 8m, 총 길이 24m에 달하는 대형 벽면에 청·적·황색의 갖가지 촛불이 바람이 일렁이며 춤추는 모습은 장대한 스케일과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같은 장관은 실상 단 하나의 촛불을 폐쇄회로 카메라로 포착한 뒤 각도와 색깔을 바꿔 비디오 프로젝터로 반복투사한 결과임을 현장에서 그대로 볼 수 있다.

촛불영상에 둘러싸인 전시실 중앙에는 'TV정원'이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식물화분 사이사이에 수십대의 비디오 모니터가 천장을 향해 설치된 작품이다.

식물속의 모니터들은 관객이 내려다보는 각도에 자리잡은 전자꽃송이로서 휴식공간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밖에 백씨가 63년 첫 개인전에 출품한 '조정된 피아노'(비엔나 현대미술관 소장)가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다. 피아노에 가시철사·인형·사진·브래지어·깨진 달걀 등을 부착시켜 악기를 오브제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로댕미술관 앞 광장에는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조용히 연주하며'가 전시된다.

24년형 윌리에서 59년형 뷰익에 이르는 자동차를 은빛으로 칠한 뒤 차내에 폐기된 모니터를 쌓아놓고 진혼곡을 연주하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선 이중 8대의 자동차를 원형으로 배열했다.

또 'TV부처' '스위스 시계' '참여TV' '임의적 접근' '비디오 물고기' 'TV로댕' '비디오 물고기' '달은 가장 오래된 TV' 등 대표작들도 줄줄이 전시장에 나온다.

관람료는 일반인 8천원, 초·중·고생 5천원이며 관람시간은 오전10시~오후 6시다. 문의(02)771-2381~2, 2259-7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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