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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제 100개만 적어보세요, 답이 보여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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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18면

인간관계는 모든 인간의 난제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한 떨쳐낼 수 없다. 고민을 넘어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비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과 더 잘 지낼 수 있을까. 이 분야 전문가인 마음과마음정신과 송형석(사진) 원장을 21일 서울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나 물었다. 송형석 원장은 인간의 심리와 관계를 다룬 책 위험한 심리학위험한 관계학을 펴냈고 2~3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유재석·노홍철·정준하의 심리를 정확히 간파해 ‘족집게’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부모와 자녀, 상사와 직원, 연인과 친구 등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방법을 전한다.
 
-인간관계는 왜 어려울까.
“갈등은 대부분 서로에게 바라는 게 달라 생긴다. 내가 원하는 건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 상대의 요구는 내가 들어줄 수 없다. 사정이 서로 다를 때가 많다. 그런 엇나감이 얽히고설켜 갈등을 일으킨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송형석 원장에게 듣는 인간관계학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려면.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남자를 예로 들어보자. 그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 사귀자고 했다. 싫지 않았던 남자는 승낙했다. 여자가 잘해줘서 좋았지만 마음이 다 채워지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장인어른 될 사람을 만났다. 어르신이 ‘자네 참 괜찮네’ 하는데 엄청난 쾌감을 느껴 여자와 결혼했다. 아버지의 대리인에게서 사랑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진짜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늘 허전할 수밖에 없다. 여자 입장에선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긴 하나, 왜 결혼했나’ 싶어 불행할 수도 있다. 내 문제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내 문제는 어떻게 바라볼 수 있나.
“막연하게 찾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 갖고 있는 문제부터 정확히 보자. 족히 100개는 나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3~5가지도 못 뽑아낸다. ‘일주일에 3번쯤 술을 마신다’ ‘애가 내 말을 안 듣는다’ ‘아내랑 사이가 데면데면하다’ 등에서 멈춘다. 이런 문제의 원인이 뭐냐고 물으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권위가 부족해서’ ‘잘 안 놀아줘서’라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자기 문제를 찾을 때 핵심은 그럴싸하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다. 아내의 ‘제발 좀 정신 차리세요’라는 말이나 아들의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듣고서야 진짜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탐색하란 뜻인가.
“자신을 둘러싼 문제가 뭔지 찾아보고 각각을 세분화한다. 꼼꼼히 나누길 반복해 뻗어간다. 100개 정도 되면 자신을 많이 돌아본 사람이다. 자신을 탐색한다는 건 자기 감정에 굉장히 예민해지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을 봤는데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고를 이어가는 것이다. 나는 왜 저런 사람을 예쁘다고 생각하는가 등.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해야 한다. 내가 뭘 욕망하는지 모르면 그대로 상대방을 찌르고 고통 받는다. 서로 불행해진다.”

-상대는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필요에 따라 파악하면 된다. 사업하는 사람은 상대가 사기 칠 사람인지 아닌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몇 가지 질문만 잘 던져도 파악된다. 또는 몸짓을 읽거나, 술자리에서 얘길 해본다든가, 손을 잡아본다든가 등 방법은 다양하다. 개인적으론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듣기 좋은 말을 듣는 순간 판단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소녀시대 윤아가 와서 ‘사랑해요’ 하면 황홀하겠지만 그 순간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소극적이면 인간관계는 좁아지겠지만 곤란할 일은 적다.”

-유독 잘 안 맞는 사람이 있는데.
“몇몇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노력해서 좋아지는 경우가 있지만 바뀌지 않는 관계도 있다. 상대가 갖고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다. 괜히 뛰어들었다가 험난한 길을 갈 수 있다. 상대를 제대로 모른다면 관계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나는 레벨 15로 낮은데 상대가 레벨 70인지 모르고 공격하면 포인트도 안 오르고 진다.”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
“무난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남한테 폐 끼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내보일 때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라는 이유다. 알면 모를 때보다 상대를 마구 찔러대는 건 줄어든다. 정신적인 성숙은 끊임없이 깨닫는 과정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가며 사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특징이 있다면.
“정신과 의사로 15년간 진료했는데 최근엔 마음의 벽을 쌓고 사는 젊은이가 많은 것 같다. 과대한 자만심에 휩싸여 있다. 크게 성공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식이지만 실제로는 실력이 뛰어나지도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한다. 수도권 대학도 못 갈 것 같은데 삼수를 해서라도 서울대만 고집한다.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아예 인간관계를 차단하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착각한다.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수혈 받지 못하니 정신건강이 굉장히 열악하다. 쌓이고 쌓여 나중에는 진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까.
“자랄 때 부모의 적절한 칭찬과 훈육이 부족했던 것 같다. 요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과거와 다르다. 아빠는 아빠답지 않고 엄마는 엄마답지 않다. 부모와 자녀가 아니라, 형제자매처럼 지낸다. 부모가 애한테 징징거린다. 아이 입장에선 보고 배울 사람이 없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하면 다행인데 학원만 뺑뺑이 돈다. 인간성이 결핍돼도 부모는 모르고 관심이 없다.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른다.”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자신에게 결핍된 게 뭔지, 무엇을 원하는지 추려볼 필요가 있다. 상담치료로 좋아지지 않을 때 배낭여행을 권한다. 유럽이나 동남아, 남미 등 낯선 곳에서 2주 이상 혼자 지내다 온다. 타성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준다. 밥을 먹고, 머물 곳을 찾는 과정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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