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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16) 우리 장을 고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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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카넬리(Canelli)에 다녀왔다. 여수 엑스포에 와인을 출품할 현지 조합의 초청이었다. 그들은 한식과 와인의 궁합을 알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 초청된 셰프들이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다. 해물전과 비빔밥, 갈비찜과 만두가 이국의 식탁에 놓였다. 그들은 입맛을 다시며 열광했다. 나는 어머니가 담근 된장을 소스로 만든 이탈리아식 뇨키(일종의 떡)를 선보였다.

 된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미소(miso)‘라는 일본어를 동원했다. 그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이미 유럽에서도 미소는 유명한 식재료였다. 지켜보던 권우중 셰프가 내게 한마디 했다.

 “선배, 그냥 된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소랑 된장은 다른 거잖아요. 기코만과 조선간장이 다른 것처럼요.”

 얼굴이 달아올랐다. 된장이 어떻게 미소가 된단 말인가. 달짝지근하게 밀가루를 넣어 만든 미소와 조선된장은 비슷하지만, 다른 계통이 아닌가.

한국의 장 문화가 요새 무너졌다고들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먹는 된장과 고추장, 간장이 모두 우리 것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다. 콩을 정성껏 삶아 주인 대신 아랫목에 모셔 메주를 띄우고, 그걸 다시 옹기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된장을 구경하는 일이 쉽지 않다. 속성으로 된장 맛을 내는 원료를 섞어 만든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 한때 된장 만드는 것이 비효율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 정부에서 개량된장을 담그라고 독려한 적도 있었다. 그런 무지와 전통에 대한 몰이해가 결국 우리 식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고추장은 또 어떤가. 어려서 고추장을 만들던 날이 생각난다. 어머니는 엿기름으로 고아낸 찹쌀이나 보리쌀을 한 사발 퍼서 식구들에게 돌렸다. 그 달콤한 맛이란! 어린 나는 그 맛있는 간식이 맵기만 한 고추장이 되는 게 아쉬웠다. 그렇게 집마다 고추장을 담그던 풍속은 사라지고, 이젠 탤런트가 광고하는 유명 회사 제품이 식탁에 올라올 뿐이다. 가가호호, 식당마다 다른 맛을 내던 음식 맛이 이제 어슷비슷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누구는 이런 장을 일컬어 뼈 있는 말을 한다.

 “된장, 고추장이 아니라 그냥 된장 맛, 고추장 맛 페이스트야.”

 간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으로 분해한, 그러니까 간장을 흉내 낸 화학 간장이 흔하게 시중에 유통된다. 달이고 달여 그윽하고 깊은 맛을 내는 간장은 눈을 씻고서도 찾기 힘들다. 간혹 선친이 묻힌 고향에 들른다. 그때마다 ‘아지매’들은 기막힌 음식을 내놓는데, 그게 보통 맛이 아니다. 감칠맛의 극한이라고 할 정도다. 하도 맛있어서 요리법을 여쭤본다. 그러면 딱 한마디 하실 뿐이다.

 “조선 된장, 고추장, 간장을 고루 넣었니더. 뭐 벨 게 있니껴.”

 우리는 그 천혜의 조미료를 왜 잃어버리고, 마트에서 그 맛의 대체품을 찾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 맛이 ‘거기’ 있기는 한 걸까.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우리 장에 대한 고민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날들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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