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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方箋전달 서비스業...황금알 사업으로 뜬다!

중앙일보

입력

의약분업으로 인한 환자의 불편과 처방전 훼손 및 변조를 방지할 수 있는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정부의 무관심 때문에 과당 경쟁과 일부 업체의 부실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세계 유례 없는 한국형 의료서비스

전국 병원들이 지난 7일 회의를 열어, 원외처방전 발행을 당초 10∼11일 양일간만 하기로 했던 방침을 변경해 10일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고 결정했다. 보건복지부가 ‘의약분업 준비된 약국’ 인증을 통해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겠다고 나섰지만 당분간은 환자들의 극심한 혼란과 불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의약분업으로 인한 혼란과 불편이 우려되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단기간에 100% 분업을 지향하는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약업계, 정부가 의약분업을 놓고 극단의 대결까지 벌이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선 다른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 없는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라는 새로운 산업이 급속도로 태동하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한 미국에서도 아직은 일부 병원과 약국이 인트라넷 방식의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전자처방전을 발행하고 있으며, 1953년부터 의약분업을 단계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는 일본에서는 팩스 원외처방전을 통해 환자들의 불편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다.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란 전국 병·의원에서 발행하는 처방전을 전자문서로 바꿔 인터넷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약국으로 빠르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지 않아도 되며, 처방전의 분실·훼손이나 변조·위조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조제 대기 시간을 단축시키고 처방 전달 내용의 정확성을 기할 수 있으며, 진료비 청구와 보험환급을 위해 처방전이나 조제정보를 재입력하는 시간과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E-메일이 아닌 DB 검색 방식이어서 약국과 환자가 처방전 처리 상황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고 환자 스스로 병적 기록을 관리할 수도 있다.

현재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 시장에 뛰어든 업체는 메드밴, MCC, 메디뱅크, 와우인포텔, 전능메디칼소프트웨어, 메디웹, 메디온, 세오컴, 메디칼익스프레스, 네트마이크로뱅크 등 10개. 아직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추가로 뛰어들 채비를 갖춘 OK정보시스템, 유니온헬스, 우신정보까지 합하면 13개 업체다. 그렇다면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 시장에 왜 갑자기 많은 업체들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가?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가 명실상부한 서비스의 면모를 갖추려면 전국 2만5천여 병·의원과 1만8천여 약국을 네트워크로 묶어내야 한다. 숫적으로 막대할 뿐 아니라 단일한 네트워크를 통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동일한 서비스를 한다는 데 엄청난 수익 모델이 잠재돼 있는 것이다. 거대 네트워크 안에서 다양한 광고, 의약품 물류 및 택배업, 의료기기 B2B와 같은 전자상거래가 발생하게 되며, 나아가 약력·병력·처방 DB에서 산출되는 각종 중요한 통계들까지 모두 높은 부가가치와 직결돼 있다. 게다가 올 연말 안에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가 시행되면 2년 안에 소위 ‘tele-medicine’ 시대가 열릴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tele-medicine이 실현되면, 전국민이 DB화된 자신의 약력과 병력을 개인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며, 이에 따라 현재 병원 진료의 70%를 차지하는 문진(問診)의 경우 온라인 상에서 의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더욱이 각 가정에서 혈압계나 혈액채취기계와 연결된 PC를 통해 기초 데이터를 병원으로 전송하면 의사가 환자의 약력과 병력DB와 연계해 원격 진료를 하는 시대가 5년 안에 열린다.

다른 모델 갖춘 13개 업체 난립 양상

많은 업체들 가운데 일단 고지를 선점한 곳은 메드밴. 작년 7월 ‘원외 처방전달시스템’을 특허출원하면서 가장 먼저 이 사업에 뛰어 들었다. 한국통신과 컨소시엄 형태로 대한약사회 전자처방전달시스템 협력사로 인증을 받은 상태이기도 하다. 더욱이 총리실 산하 국책연구원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원외 전자처방전달시스템 구축 타당성 연구’(책임연구원 정우진 박사)에도 참여해, 지난 7일엔 서울시 일원 의료기관 및 약국 13개소의 참여 하에 전자처방전달시스템에 대한 1차 현장 시험을 마쳤다.

이날 현장 시험을 통해 전자처방전의 발송 및 수신, 대체조제 통보 및 내역 확인 등 기본 기능은 물론, 진료비 심사청구 업무와의 연계성, 송·수신된 전자처방전의 보안성, 시스템의 안정성 등에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 업체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약사회, 정부부처, 학계, 시민단체, 연구기관 등에서 전자처방전달시스템의 필수 요건으로 내세운 처방전 전달시의 시스템 안정성, 국가가 보증하는 인증시스템 구비, 처방전 전달시 환자의 신상 및 병력정보의 보호, 의사와 약사의 사용 편의성, 전국 규모 확대 및 시스템 표준화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 보유 등에서 단연 앞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법적 유효성 명시·보안 표준 시급

하지만 일부 선점 업체들의 기술적 우수성과 전문성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행정부의 명확한 정책이 전무하다는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 건강이란 생명의 기본권과 관련된 사업이기 때문에 공익성을 담보해야 할 사업인데도 주무부처에서 기초 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크고 작은 업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제각각 다른 솔루션을 갖추며 난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도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관점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전자처방전의 법적 유효성 문제다. 기존의 종이처방전을 전자처방전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반이 법적·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인터넷을 통한 전자처방전은 약사를 위한 참고용일 뿐이기 때문에 약사는 의사가 쓴 수기(手記) 처방전을 받아야만 처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이에 대해 보건사회연구원의 정우진 박사는 “의료법 제18조의 2(처방전의 작성 및 교부)와 의료법 시행규칙 제15조(처방전의 기재사항 등), 정보통신부에서 작년 7월 통과된 전자서명법 제3조 1항과 제3조 2항을 통해 일단 전자처방전의 법적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일 표준의 시급한 정립 문제.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의 생명과도 같은 보안성 문제가 업체마다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풀려가고 있는 것이다. 보안성 문제는 의사와 약사 등 사용자의 인증, 위조·변조·수정 검출을 포함한 전송된 메시지의 인증, 전자서명생성키를 이용한 전자서명, 중계시스템의 안정성, 환자 약력·병력 DB에 대한 보안성 등 어느 한 부분에서 사소한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다양한 기술적 방법론이 있을 수밖에 없어 업계마다 자기 방식대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더불어 공익과 관련된 전국 규모의 대규모 사업 주체를 한 민간업체로 국한시킬 것인지, 지역적으로 분할시킬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정부의 입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처방전 전달 서비스가 국민의 건강·생명과 직결된 공익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복마전에 가까운 유통구조를 갖고 있는 약품산업과 관련한, 그리고 의료기기 및 병·의원 전산화 B2B와 관련한, 또 하나의 ‘황금알 낳는’ 산업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업체들이 난립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하고 그 와중에 일부 서비스업체와 병·의원, 약국의 담합도 가능할 것이란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공공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어느 정도 ‘관여’와 ‘교통정리’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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