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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 문헌자료 4권으로 집대성

중앙일보

입력

서구의 일반적 시대구분론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조선 정조(正祖.1752~1800.재위기간 1777~1800)시대는 한국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흔히 '조선의 르네상스' 로 통한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과 변혁의 꿈틀거림이 마치 중세의 암흑에서 깨어나는 유럽 문예부흥기의 열기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변혁의 중심축은 정조 자신이었고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밑에서 학문에 정진, 엄청난 축적을 가져왔다.

정조대에 편찬된 문헌 목록집인 〈군서표기(群書標記)〉를 보면 1백40여 종 4천 권에 이르는 문헌이 편찬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황제의 재위기간 중 고작 2~3백권 남짓한 책을 낼 경우 학문의 업적을 인정받던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결과물이다.

임진왜란와 병자호란 등 국난의 유산을 수습, 학문을 번성시켜 실학(實學)의 시대로 여는 가교역할을 한 정조 연간의 문헌을 총정리한 연구서가 4권의 단행본으로 엮어져 나왔다.

문헌연구의 독보적 존재를 자처하는 30.40대 소장 한국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문헌과해석〉이 3년간의 연구물을 축적해 해놓은〈정조대의 문헌〉(문헌과해석사)시리즈가 그것.

전법(戰法)류 등 지극히 전문적인 몇개의 분야을 제외하면 정조대 인문.사회과학적 문헌을 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조가 직접 편찬을 주관한 〈어정서(御定書)〉와 규장각 각신들을 비롯한 국왕 측근의 신료들이 분담하여 편찬한 〈명찬서(命撰書)〉가 사료의 핵심이 됐다.

이번 시리즈는 경학(經學)과 주자학(朱子學).문학.예술과 과학.어학 등 4개 분야로 구성됐다.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은 규장각 학예연구사인 김문식(국사학)씨가 저술했고, 〈정조의 시문집 편찬〉은 성신여대 강혜선(한문학) 교수가, 〈정조대의 예술과 과학〉은 전북대 임미선(음악학) 교수 등이 함께 썼다. 〈정조대의 한글 문헌〉의 편찬에는 한국기술교육대학 정재영(국어학) 교수 등이 참여했다.

잘 알다시피 정조대 학문연구의 중추기관은 규장각(奎章閣)이었다. 학문을 즐겨 신료들과 토론하기를 즐긴 정조는 정약용 등 인재들을 중용, 이곳을 자료의 수집과 정리.편찬의 산실로 삼았다.

연구서에 따르면 정조는 박학(博學)보다는 요약을, 학습보다는 실천을 강조했다. 그래서 경서의 원문만 수록한 정본(正本)이나 원문을 요약한 선본(選本), 그리고 원문의 주석을 집성한 책들이 많이 편찬됐다.

경학 문헌의 선본인 〈오경백편(五經百編)〉과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등이 이 때 나왔다. 또한 정조는 주자학을 존숭해 백성의 교화에 이용했다. 주자의 편지글 모음집인 〈주서백선(朱書百選)〉등이 그것이다.

정조는 시문의 선발 작업에도 직접 가담했다. 그의 문화정책의 핵심은 조선중화주의였는데 "우리 동국에서 태어난 이상 마땅히 우리 동국의 본색(本色)을 지켜야 한다" 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三峯集)〉이 명찬서로 나오는 한편 주자와 두보(杜甫)의 시선집 출간도 활발했다.

공동 저자 중의 한 사람인 정재영 교수는 "전통시대의 학문은 역사.문학.철학.예술이 함께 있는 종합성격이 강했다" 며 "여러 학문 연구를 교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체적인 시대상을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평가했다.

문헌과해석은 올 봄부터 〈17세기 문화지도〉를 기획, 공부에 들어갔다. 마침 올해가 정조 서거 2백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번 시리즈 출간은 더욱 뜻깊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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