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선량들아 잘난 척 마라…엄지가 리더 만드는 현실서 용도폐기 위험을 못 느끼는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J D 샐린저의 소설 『호밀 밭의 파수꾼』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으레 남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스스로 자기에게 반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도 자기에게 반하고 있는 줄 알고 말이다.” 남이 내게 뭔가 해주는 데 익숙하지만 내가 남을 위해 하는 일에는 손이 설다는 얘기다.

 서양만 그런 게 아니다. 춘추시대 개인주의 사상가 양주가 유세 도중 어떤 여관에 묵었다. 주인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미인이었고 다른 이는 못난이였다. 그런데 못난이는 귀염을 받고 미인은 천대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까닭을 묻는 양주에게 주인이 하는 말. “미인은 제 스스로 미인인 체하기에 나는 그 아름다움을 모르겠고, 못난이는 제 스스로 못난 줄 알기에 나는 그 못남을 모르노라.”

 선량들 사교장인 국회가 언죽번죽해 국민에게 천대받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다. 잘난 사람들과 잘났다고 믿는 사람들,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까닭이다. 엎드려 표 구할 때가 지나면 그뿐, 스스로 잘나 뽑혔을 따름이다. 못난 국민은 눈에 들지 않고, 잘난 내게 유리한 길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다. 서로 악다구니를 쓰다가도 잘난 이익 앞에서는 여야, 좌우 따로 없이 한목소리가 된다.

 약사 표 잃지 않으려고 국민 대다수의 뜻은 가볍게 무시했고, 노인 표 얻어야 하기에 미래세대의 부담 따위는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제 이익 말고 뵈는 게 없으니 이해가 갈리면 대화가 통할 리 없다. 아무리 옳은 길이라도 상대 설득은커녕 알쏭달쏭 국민조차 납득시키지 못한다. 결과는? 전기톱이 돌고 해머가 난다.

 선량들의 이런 잘난 척이 어제오늘의 일인가마는, 오늘 새삼 더 우스워 보이는 건 곧 용도폐기될지 모를 자기 운명에 대한 천착 없이 그저 관성을 따라 움직이는 로봇들 같아서다. 이미 정당 아닌 엄지 네트워크가 서울시장을 만들어내고, 가장 강력한 대권 돌풍 역시 여의도 밖에 진원지를 두고 있는 현실이다. 의회 연설보다 트위터 괴담이 같은 거짓말이라도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게 거짓 아닌 현실이다.

 잘난 사람들이 여관집 주인의 지혜만 못해서 되겠나. 집권이 아니라, 점차 구체화하고 있는 국회 불용론을 두려워해야 할 때란 말이다. 당장 일자리가 없어지진 않더라도 입법 거수기로 전락할지 모를 위험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런 잘난 체로 국민 마음을 불편하게 하진 못할 일이다. T S 엘리엇은 시극 『칵테일 파티』에 이렇게 썼다. “세상 대부분의 말썽은 중요한 인물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그가 잘난 척하는 사람이라면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