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차 국제 에이즈회의 더반서 개막

중앙일보

입력

제13차 국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회의가 에이즈 전문가 등 각국 대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동부 해안도시 더반에서 개최됐다.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개막 연설에서 가난이 세계 최대의 적이며 보건 위기와 전세계 고통의 주범이라고 강조하고 아프리카 대륙을 엄습하고 있는 에이즈는 아프리카 특유의 방식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앞서 음베키 대통령은 "에이즈의 실제원인은 저개발, 빈곤, 영양결핍, 불량한 위생상태, 풍토병 등인 만큼 아프리카의 에이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특유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 국제사회의 논쟁을 촉발시켜왔다.

그는 특히 대부분의 에이즈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에이즈 바이러스(HIV)가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설의 진위를 조사한다며 지난 5월 조사팀을 발족하는 한편, 산모가 태아에 에이즈균을 전염시킬 것을 우려, 산모에 에이즈 치료제 제공을 거부키로 결정해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비판론자들은 에이즈가 지구상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 전역에서 창궐,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음베키 대통령이 시간과 정열,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특히 의사와 과학자, 에이즈 전문가 5천여명은 국제에이즈회의 개막에 맞춰 HIV와 에이즈의 연관성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주장, 음베키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하는 이른바 `더반 선언''을 발표하고 제약회사측에 에이즈 치료제의 가격을 대폭 인하할 것을 촉구했다.

또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경없는 의사회와 세계 각국 에이즈퇴치운동가 수백명은 더반에서 가두행진을 갖고 HIV 및 에이즈 치료가 개도국들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결핍돼 있다며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그러나 음베키는 이날 연설에서 자신이 전문팀을 구성했던 것은 에이즈에 관한 지식을 얻고 에이즈 예방을 위해 서방측이 만들어낸 콘돔, 성교육, 레트로바이러스 퇴치약 등이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퇴치하는데 과연 충분한 효능을 갖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피터 피요트 유엔에이즈계획(UNAIDS) 국장은 회의개막 직전 "현재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 에이즈와 관련해 사용되는 자금이 연간 3억5천만달러에 불과하다"면서 "에이즈 확산을 막고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최소 연간 3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요트 국장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매년 150억달러를 부채 상환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이들 국가가 매년 보건과 교육 부문에 투자하는 자금의 네 배에 달하는 거액"이라며 "선진국과 국제금융기구는 부채 탕감을 통해 아프리카 국가가 에이즈퇴치에 더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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