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회 체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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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불쾌지수 또한 점점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인터넷을 통해 만난 한국 신문들의 기사가 정확하다면 말이다.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사람 잡는 더위로 지쳐가고 있는 한국이 아니라 제35회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35th Karlovy Vary International Film Festival, 7.5 - 7.15)가 열리고 있는 체코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카를로비 바리이다. 세계적 문호 괴테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쯤 꼭 살아봐야 할 곳이며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극찬했던 아름다운 온천 도시 카를로비 바리는 체코 서북쪽에 있는 인구 6만명의 소도시로 보헤미아 지역의 문화 중심지. 오랫동안 독일문화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14세기 중반 게르만의 황제이며 보헤미아의 군주였던 카를 4세가 온천 휴양지로 삼으면서 카를스바트(카를스의 온천장)로 불렸고 카를로비 바리는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아직 국내엔 생소하지만(이번 영화제를 위해 물 건너온 한국기자는 필자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다) 올해로 35회를 맞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는 사실 숫자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칸 영화제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고 수준에서도 칸이나 베니스에 맞먹었다. 그러나 1957년부터 공산 정권에 의해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와 격년제로 바뀌었고 이때부터 영화제는 정치무대가 되면서 관객의 관심 밖으로 차츰 밀려났다. 그러다 60년대 말 프라하의 봄은 카를로비 바리까지 미쳤고 그 결과 당시 베니스나 칸에서도 생각지 못한 제3세계영화를 과감히 끌어들임으로써 크게 성공했다. 브라질의 시네마 노보 영화들을 유럽에 최초로 소개한 것도 이 영화제. 하지만 그것도 잠시, 68년 소비에트 침공 이후 20여년간 영화제는 정부주도로 진행됐다.

그러나 90년대 초 하벨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뒤 영화제는 새롭게 탄생했다. 정부와 모스크바로부터 독립된 민간 영화제로 바뀌었고 행사도 해마다 치르게 됐다. 한편 1992년 슬로바키아가 체코로부터 분리되면서 영화제에도 큰 변화가 왔다. 다행히 두 나라는 몇 달 뒤 총한번 쓸 필요 없이 평화적으로 헤어져 발칸에서와 같은 비극은 없었다. 하지만 영화제는 계속 함께 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결국 실행되지 못했다. 어쨌든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는 계속 유지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있으며 비록 동구권이 우수수 몰락한 가운데 정치적 색깔은 많이 죽었지만 여전히 사회성 짙은 영화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초청된 우리 영화들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홍상수' 감독의〈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강원도의 힘〉,〈오! 수정〉, '이명세' 감독의〈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두용' 감독의〈애〉등. 그중〈박하사탕〉만이 경쟁부문에 출품되어 현재 세 번의 공식 상영이 모두 끝난 상태이다. 언론과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호의적이라 관계자들을 들뜨게 하고 있으며 조심스레 수상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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