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음지의 관행 바꾸는 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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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진성호감독(현대)의 일선 퇴진은 한국 스포츠가 또하나의 전환기를 맞았음을 시사한다. 성적 지상주의가 퇴조하고 과정의 건강함을 요구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스포츠 문화의 소비자인 팬들이 감시자로 떠오르면서 우리 스포츠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대는 선수 체벌 파문을 ‘흔히 있는 일’로 치부하려 했으나 빗발치는 팬들의 비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는 한국 스포츠에 던져진 ‘무게있는 메시지’다.어떠한 경우에도 경기력 향상을 명분삼은 체벌은 있을 수 없다는 판례가 마련된 것이다. 여기에는 한가지 숙제가 남는다.

체벌은 현대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적 향상을 위한 체벌은 하나의 ‘관행’이었고 성적이 좋으면 과정의 문제는 양해되는 것이 우리의 스포츠 문화였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체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아직도 많은 지도자들이 “교육적인 체벌은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엘리트 지도자로 꼽히는 연세대 농구팀 최희암감독은 “선수를 때린다. 교사들도 매를 든다. 스포츠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현장’의 목소리다.

그러나 과정의 건강성이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한 현장 지도자들의 인식은 이상과 현실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강압적인 지도와 체벌은 일종의 관성과도 같아 쉽게 중단되기 어렵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팬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만 내면 된다’는 명제를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구단·감독·선수들이 이러한 추세를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다.

억압적 방식이 통하던 소수 엘리트 스포츠의 시대는 끝났다.

팬들이 스포츠 문화의 주인이자 소비자인 시대가 온 것이다.따라서 진감독 파문은 사태의 마무리가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어두운’ 체질을 바꾸는 하나의 출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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