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살아있는 호랑이 발톱

중앙일보

입력

해태 김응룡 감독은 빼어난 ‘승부사’다. 경영난에 몰린 해태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김감독의 능력은 더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거물급 선수들은 해외 진출이나 국내 타팀으로 트레이드 되고, 신인 지명 선수 중 ‘알이 굵은’ 지명순위 5번 이내의 선수들은 제대로 영입도 못하는 처지의 팀을 끌고 나가는 힘은 ‘선별야구’.

김감독은 페넌트레이스를 운용하며 이기는 경기와 지는 경기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 해태의 선발진을 감안할 때 미리 그 구분을 내리기는 불가능한 상황. 다만 경기를 진행하면서 승리의 기미가 보일 때는 여지없이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상대를 물고 만다.

9일 광주 롯데전은 해태로선 선발 최상덕을 감안할 때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 3-3동점이던 7회 코끼리 김응룡 감독은 오봉옥 카드로 뒷문단속에 들어갔고, 9회에는 이대진을 내보내 경기를 마무리하는 ‘2단봉쇄’전법을 사용했다.

롯데도 9회 선두 박경진의 안타를 필두로 2사만루의 역전기회를 잡는 등 총력전을 펼쳤지만 140대 직구를 타자 몸쪽으로 붙이는 이대진의 공을 쳐내긴 쉽지 않았다.

해태가 올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 특히 삼성이 최근 11연승의 호조를 보이고 있어 혹시나 했던 리그 3위의 한줄기 희망도 가늘어 지고 있는 형편.

하지만 ‘캐스팅보트’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정신력으로 무장한 선수들과 짜임새 있는 수비, 짧게 끊어 치는 타격으로 상대를 물고 늘어진 뒤 마무리 계투조인 오봉옥과 이대진이 철벽작전을 수행에 성공한다면 어느 팀도 해볼만한 상대.

특히 현대와 두산은 후반기 들어 해태의 발톱을 조심해야 할 형편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비추어 이들 팀에게 호랑이의 견제가 집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동렬이 일본으로 건너간 96년에도 해태호를 우승으로 이끈 ‘용장’ 김응룡 감독이 시즌 말까지 보여줄 포효는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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