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필 명품 사운드 비결은 지휘자 래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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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연주를 마친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목관악기 단원들을 찾아가 일으켜 세우고 있다.

명품 소리에는 이유가 있다. 15, 16일 베를린 필하모닉(베를린필)이 증명했다. ‘베를린 사운드’는 말러·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으로 한국 청중의 귀를 황홀하게 했다. 베를린필의 강점은 소리였다. 정교한 앙상블은 간혹 흐트러졌지만, 각 악기군의 음색과 개인기는 ‘세계 최고’를 증명했다. 그 비결은 무대 풍경에 숨어있다. 관객이 궁금해했을 세 장면을 풀이해본다.

 ① 악장은 왜?=베를린필 전체를 이끄는 바이올리니스트, 즉 악장은 네 명이다. 보통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둘이다 . 이들 넷 모두 내한했다. 공연 양일에 각각 두 명씩 나란히 앉아 오케스트라를 끌고 갔다. 특이한 점은 넷 중 누가 악장 자리에 앉을지가 공연 직전 결정된다는 것. 다른 오케스트라보다 악장이 많고, 모두가 준비돼 있다는 뜻이다. 빠른 템포마다 현악기 기량이 눈부셨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석진도 두텁다. 보통 악단엔 각 악기의 수석이 한 명. 베를린필은 최소한 둘이다. 더블베이스 수석만 셋이다. 때문에 15, 16일 연주에서 단원 상당수의 얼굴이 바뀌었다. ‘스타 단원’인 플루트 수석 엠마누엘 파위를 16일에만 출연시킨 건 명문 악단의 여유였다.

 ② 한국인 단원은 누구?=단원 중엔 한국인도 있었다. 플룻트의 김세현(22)씨다. 그는 독일에서 함께 내한한 객원 단원 중 하나다. 120명 규모의 베를린필은 객원 단원 20명과 함께 해외 공연을 다닌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소속이다. 지휘자 카라얀이 1972년 창설한 이후 젊은 연주자들을 뽑아 수석 단원들이 직접 가르치고 연주를 함께 한다. 3년 전 내한 때 눈에 띄었던 이윤미(30·비올라)씨 역시 이 아카데미에 소속된 객원 단원이었다. 베를린필은 떡잎을 눈 여겨 보고, 시험 기간을 거쳐 정식 단원으로 채용한다. 연주를 하고, 미래 단원도 키우는 1석2조 시스템이다.

 ③ 래틀은 왜?=연주가 끝난 후, 지휘자 사이먼 래틀(56)은 단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악수를 나눴다. 보통 지휘자들은 단원들을 손짓으로 일으켜 세운다. 래틀은 ‘21세기형’ 지휘자로 유명하다. 독재자로 군림하던 지휘자의 시대를 바꿨다. 지휘 또한 연주자들을 잘 놀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번 공연을 주관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측은 “원래 오케스트라들이 내한하면 지휘자만 다른 호텔에서 묵지만, 베를린필은 단원이 지휘자와 동등하다는 생각 때문에 같은 호텔을 지정해달라 한다”고 귀띔했다. 풍부한 연주자, 탄탄한 시스템, 민주적 분위기가 명품 사운드의 원천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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