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만난다. 18~1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다. 이를 위해 17일 출국한다. 미국은 지난해 EAS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앞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3∼4일)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2∼13일)에서도 만났었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이 15일 국회를 방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고 3개월 이내에 내가 미국에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를 재협상하자고 요구하겠다”고 제안한 걸 두고 오바마 대통령과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추측한다. 이 대통령의 제안 직후 미 무역대표부(USTR)가 익명의 통상 당국자발로 “FTA 발효 후 ISD 재협상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 대통령의 순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방문 때 동행했던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재협상 얘기를 꺼낼 때 나도 놀랐다”고 말했다. 정상회의 때 이 대통령과 함께했던 인사들도 “ISD 같은 전문적인 얘기를 하려면 두 정상이 제법 길게 면담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은 없었다” 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이 전날 “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약속을 받으라는 건데 나도 자존심 있는 사람이다. 주권국가로서 맞지 않는다”고 사실상 부인했듯 두 정상이 ISD라는 구체적 안건을 놓고 대화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다만 이 대통령이 재협상의 근거로 든 협정문 22장(협정 발효 후 90일 이내에 설치되는 공동위원회에서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을 놓고 양국 실무진 간 물밑대화는 있었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USTR 대표가 “공동위 산하에 한·미 FTA 서비스·투자위를 두고 어떤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의 공식서한을 주고받은 게 대표적인 경우다.
청와대와 백악관 간 채널이 가동됐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과의 상시 채널인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뿐 아니라 백용호 정책실장도 움직였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미국도 한국 언론 보도를 보고 상황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정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