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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무〉, 허술한 영화화에 반발한 원작팬들

중앙일보

입력

"영화를 보면.. 바람을 타고 분노가 춤을 춘다!"

다름아닌 영화 〈비천무〉의 카피에 단 한 마디를 덧붙인 카피. ..얼핏봐도 비꼬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는 이 글귀가 쓰여있는 곳은 〈비천무〉의 허술한 영화화에 분노한 원작팬 - 그 중에서도 원작자 김혜린씨의 팬클럽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있는 만화 연구·토론 모임 '철기십조(鐵騎十組)' 팀원들이 제작한 '안티 비천무' 홈페이지이다.

문제의 발단은 말할 것도 없이 영화화된 〈비천무〉의 개봉. 정식 개봉 이전의 시사회를 보고 온 원작 팬들은 한결같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미 수많은 언론매체의 반응과 보고 온 사람들의 반응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원작 〈비천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매력들을 시나리오 속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하고 배우들의 떨어지는 연기력까지 가세하여 좋은 평을 얻기는 어려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만화와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것을 넘어서, 영화 자체만으로도 수준미달의 시나리오로 인해 '이야기'가 화면이 보여주려는 만큼을 따라가지 못해버린 것. 이 때문에 단행본 6권의 분량이란 '밥'을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이란 '김'에 말아넣으려다 보니 그만 김밥 옆구리가 터져버린 상황이 전개되어버렸다. '영화'의 영상으로 제대로 바뀐 것도 아닌, 원작의 장면장면을 그저 싹둑싹둑 잘라붙여놓은 듯한 극의 흐름에 원작의 감동을 간직하고 극장을 찾았던 많은 원작의 팬들이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시사회를 먼저 보고왔던 김혜린씨의 팬들 중 이미 조직(?)을 이루고 있던 '철기십조' 팀은 영화 〈비천무〉의 공식 홈페이지의 모양새를 패러디하고 카피와 메뉴 등을 고쳐 영화 〈비천무〉에 반(反, anti)하는 페이지를 만들어 7월 3일 자정을 기해 공개했다.
이것이 '안티 비천무' 홈페이지. 놀랍게도 플래쉬 인트로와 메뉴 구성 등을 원작의 그림으로 치환시키는 등의 노력으로 공식 홈페이지의 거의 모든 요소를 세심히 패러디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안티 홈페이지는 김혜린 선생님께 폐를 끼치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니요, 영화 비천무를 무턱대고 욕하자고 만든 홈페이지도 아닙니다. 또한 영화 비천무 사이트에서 불거진 싸움을 계속해서 벌여나가기 위함도 아닙니다. 단지 영화 비천무가 원작 만화 비천무에 비해 작품성이 너무나도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원작 만화 비천무의 본 모습을 널리 알리고 함입니다."라고 개설 취지를 밝히는 '철기십조'팀의 말은 단순히 작품을 비난하기 위해서 anti페이지를 만든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사이트 곳곳을 통해 '말싸움 자제'를 요구하고 있어 〈비천무〉공식페이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젠 수습하기조차 어렵게 된 관객들의 소모전에 가까운 말싸움을 피하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페이지의 내용들이 상당히 거친 표현들이 산재해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분노'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는 원작 팬들의 실망감이 그대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의 공개와 함께 공식페이지의 게시판 등과 팬 페이지등을 통해 여과없이 드러나는 몇몇 사람들의 인식은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원작만화가 ○같으니 영화도 이 모양..'라는 것은 양반. '눈물이나 흘리는 순정만화를..' '만화주제에..' '만화가가 영화를 찍던가'식의 표현... 여기에 모 유명 영화관련지의 기자가 쓴 수준미달의 평론까지. 이미 영화와 이러한 글들로 인해 속이 상한 그들의 표현수위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수준까지 치닫는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것이 비난이 아닌 '원작을 제대로 알자는 노력'이라는 것은 사이트 곳곳의 메뉴를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쉽게 드러난다. 단순히 비난하기 위해서였다면 카피 패러디와 메뉴 패러디, 로고에 피로 갈긴듯한 ANTI라는 붉은 글씨만으로도 충분했을테니까.

그러나 원작자 김혜린씨에 대한 소개와 단행본으로 출간된 만화의 스토리 & 영화 스토리 다이제스트, 원작과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비교분석, 작품의 핵이 되는 장면들의 비교 등은 분명 비난과는 거리가 먼 높은 수준의 텍스트들. 특히나 단순히 영화에 녹아나지 않아 아쉬운 장면들과 캐릭터들의 가치관들을 정리한 '영화가 놓친 명장면' 파트는 그 중 압권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지 않고 단순히 표면적인 것만을 보며 '만화가 말이야..'식으로 비난하기엔, 그들의 의도와 노력이 아쉽지 않을지 싶다.

이미 많은 언론과 관객들의 눈에 의해 영화에 대한 평은 내려진 듯 하다. 그리고 원작이 되는 만화 〈비천무〉의 팬들은 분노를 넘어 자신들의 작품사랑을 웹공간을 통해 표출해내었다. 이 페이지를 두고 벌써 비난하는 글들이 공식페이지 등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안티페이지 또한 싸움터가 될 공산도 없지 않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내건 사이트개설 목적과 방침을 제대로, 그리고 끝가지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안티페이지가 반(反)하는 이유와 제대로 된 태도를 지켜나갈때 자신들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기때문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작품의 본모습을 알리려는 것, 그것을 잃고 상기한 비난과 다를 것 없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들 역시 단순히 비난자 무리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안티 비천무' 홈페이지: http://antib1000.inticity.com
-〈비천무〉공식 홈페이지: http://b1000.co.kr/default.html
- '철기십조'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metalr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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