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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엔 책임 따른다” 안철수 권력의지 … 스파이더맨 꿈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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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일 대학원으로 출근하며 주식 지분 사회환원 방침에 대해 “단지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성룡 기자]

니체는 남을 정복하고 동화하여 스스로 강해지려는 의지, 이걸 권력의지라고 불렀다. “권력의지는 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 충동”(『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라고 말했는데, 니체가 어떻게 말했든 대권을 추구하는 사람 치고 권력의지가 없는 사람은 없다. 종종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력의지의 화신으로 묘사되곤 했다. 권력의지는 정치인을 움직이는 힘이며 대권을 추구하는 사람의 필요조건이다.

정선구 부장

1500억원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안철수(49)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권력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안 원장에게 권력의지를 묻는 건 그가 대권 행보를 끝까지 완주할 것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기본 자격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지난해 9월 30일 조선호텔 일식집 스시조. 마주앉은 안철수 당시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의 말이 의외였다.

 “제 얼굴 한번 보세요. 사람을 자르지(해고) 않게 생겼지요?”

 느닷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니 스스로 대답한다.

 “절대 아닙니다. 큰 잘못을 한 직원, 과감히 자릅니다. 특히 라인을 만드는 사람, 그래서 조직을 해치는 사람에겐 가차 없습니다. 한 간부는 해고 통보를 받자 제 앞에서 펑펑 울더군요.”

 안 원장은 “사람이 얼굴만 봐서는 알 수 없더라고요.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조직을 해치고…”라고 말을 이었다.

 생전 화 한 번 낼 것 같지 않은, 얼굴만 쳐다봐도 금방 온화함에 쏙 빨려들어갈 것 같은 사내 안철수. 하지만 조직의 이름으로 이탈자에게 단호한 면모를 그에게서 보았다.

 안 원장이 즐겨 하는 말 중에 ‘스파이더맨’이 있다. 그는 올 6월 27일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들의 학술포럼인 ‘JB(중앙 비즈니스)포럼’에서도 스파이더맨 이야기를 꺼냈다. 안 원장은 “자기가 원하든 원치 않든 힘이 생기면 책임이 따른다”며 자기를 스파이더맨에 비유했다. 정치는 체질에 맞지 않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파워’가 생기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정계에 진출할 것인가.

 “(즉답 대신) 혼자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괜찮은 분들도 (정치권에) 들어가서 그냥 나오지 않습니까.”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흔적을 남기는 겁니다. 제가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 차이가 있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직업을 자주 옮기게 됐습니다(의사→기업인→교수).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아무런 차이를 못 만들면 인생을 낭비하는 거잖아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그겁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바꿀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그런 때가 올까요.”

 -직접 정치에 나서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건 비겁한 것 아닌가.

 “제가 사람 부리는 거 익숙지 않고, 제가 권력욕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쾌감이 아니고 짐이에요. 파워를 즐기기만 하고 부담을 안 느끼면 정말 편하게 살 텐데 저하고는 안 맞나 봐요.”

 권력욕심과 권력의지는 다르다. 욕심이 없어도 의지는 있을 수 있다. 안 원장에게 ‘혼자서 쾌감을’ 추구하는 것은 권력욕심이고 ‘여러 사람과 뜻을 함께’ 하는 것은 권력의지처럼 보인다.

 그는 지난해 식사 자리에서는 공직 진출을 고민한 사례도 소개했다.

 “나는 정치할 체질이 아니고 관심도 없는 데 딱 한 번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제의를 받았습니다. 고민하다가 결국 거절했죠. 이유는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안 원장의 말을 뒤집으면 그의 권력의지, 혹은 선출직 진출 의지는 ‘여럿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때’ 표출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안 원장은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하기 전 “서울시장은 국회의원과 달리 바꿀 수 있는 것이 많다”며 의지를 비췄다.

 권력의지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정치를 하거나 대권을 추구할 때 필요한 태도이며 요소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 그보다 낮은 가치를 포기하면 그것이 권력의지의 태도이자 요소일 것이다. 안 원장은 지난달 28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 등 자신이 겸임하고 있던 각종 자리를 포기했다. 그리고 평생 번 재산의 반을 포기했다. 이런 포기들은 한 달 사이에 연쇄적으로 이뤄졌다. 자리와 재산을 포기하면서 그가 추구하는 더 높은 가치는 뭘까.

 이명박 대통령은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으로 노동과 봉급의 가치를 생명처럼 여긴다. 그런 이 대통령이 2007년 대선후보 시절 330억원에 달하는 대부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도 자기 재산의 일부(범현대가 포함 5000억원어치)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생명처럼 여기던 가치를 포기하는 대신 그들이 추구한 가치는 중립적 의미의 권력이다. 대선을 1년쯤 남긴 이 시기에 안 원장이 비슷한 선택을 했다. 리얼리즘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권력의지가 깔리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안 원장에 대해 “많은 재산 때문에 대선 출마가 불가능할 것이다”는 밑도 끝도 없는 소문이 돌던 터다.

글=정선구 산업부장
사진=김성룡 기자

◆스파이더맨=평범한 사람이고자 하는 한 젊은이가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공동체의 악을 제거해 영웅이 되는 영화다. 스파이더맨의 마지막 대사는 ‘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막강한 권력에는 늘 큰 책임이 따른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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