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과잉 대표성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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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도대체 이들이 누구를 위해 이러는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겉으로는 미국과 체결한 FTA가 국민과 국익에 반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정말 국민과 국익을 생각해서라면 농성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해서라도 한·미 FTA의 비준을 저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가 한·미 FTA가 국익 증대에 이롭다고 증언한다. 여기다 여론조사를 해봐도 국민의 절대 다수가 한·미 FTA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야당이 내세우는 국민은 누구며, 국익은 무엇이란 말인가.

 실은 여기에 교묘한 언어의 조작이 숨겨져 있다. 사실 야당이 한·미 FTA를 반대하며 앞세우는 국민은 전 국민이 아니라 ‘국민의 일부’며, 그들이 지키겠다는 국익 또한 득실을 감안한 종합적 국익이 아니라 특정 집단 또는 계층의 이익이다.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당연히 피해를 보는 분야가 있다. 이는 협상 단계부터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고, 이들이 한·미 FTA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국익에 득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 추진을 결심한 것이다.

[일러스트=강일구]

 사정이 이러함에도 민주당과 민노당은 눈 질끈 감고 ‘일부 국민’을 ‘전체 국민’으로, ‘특정한 이익’을 ‘전체 국익’으로 포장해 국민과 국익을 위해 한·미 FTA를 반대한다고 한다. 하기사 명색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국민과 국익을 도외시한 채 일부 국민과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내놓고 주장하기는 남사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의문이 든다. 정치인이나 정당이 이토록 강경하게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때는 당연히 유권자의 표심을 염두에 두었을 텐데 어째서 국민 다수가 아니라 일부의 입장에 일방적으로 기울었느냐는 것이다. 득표에 보탬이 되려면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마땅한데도 말이다.

 민주당과 민노당이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표심은 단순한 여론조사의 지지도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특정한 계층이나 세력의 목소리가 실제 비율보다 더 크게 반영되는 이른바 과잉대표(過剩代表) 현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과잉대표란 한마디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얘기다. 한·미 FTA의 경우를 보면 반대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요란한 반면 찬성하는 대다수는 적극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FTA로 얻어지는 이득은 눈에 보이지 않게 국민 전체에 퍼져나가는 반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범위와 대상이 뚜렷하다. 추상적 이익과 구체적 손해가 맞붙었을 때 누구의 목소리가 클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기다 ‘찬성은 매국’이고 ‘반대는 애국’이라는 딱지까지 붙여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한 선전공세를 벌인다면 소심한 다수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다.

 과잉대표 현상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선거 결과는 박빙이라던 여론조사와 달리 상당한 표차로 시민단체 출신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한 선전전은 막강한 대중 동원력을 현실로 입증해 보였다. 인터넷과 통신기기 사용이 능숙한 20~40대 유권자층은 첨단기기 사용에 둔한 50~60대보다 선거에서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몇몇 연예인과 작가, 교수들은 누구도 그들에게 정치적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았음에도 정치 지도자를 능가하는 여론 주도력을 가졌다. 이들을 따르는 사람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 해도 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발언이 열성적 추종자들에 의해 광속으로 퍼져나가면서 실제 이상의 대표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들이 실제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도한 이후 정치권은 이들의 과잉대표성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증폭된 이들의 목소리는 흡사 대세를 좌우할 듯한 기세로 크게 들린다. 신문과 지상파 방송 등 이른바 제도권 언론조차 이제는 트위터와 인터넷 댓글을 쫓아다니고, 사실과 허구가 넘나드는 인터넷 방송 ‘나꼼수(나는 꼼수다)’의 동향을 전하기에 바쁘다.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과잉대표성을 방치할 경우 민주적 의사결정의 원칙 또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목소리 큰 소수를 다수로 착각하고, 이들의 주장을 여론의 대세로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은 훼손된다. 자칫 잘못하면 소수의 목소리에 눌려 다수가 소외되는 비민주적 사회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합리적 논의나 건전한 토론은 실종되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자극적 선동만이 난무하는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