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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문제 정리한 안철수 … 대권플랜 수순 밟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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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정치권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재산 정리에 들어갔다더라”는 얘기가 풍문처럼 나돌았다. 홀가분한 운신을 위해 ‘짐’을 내려놓으려 한다는 얘기였다. 안 원장이 14일 사재 1500억원을 내놓기로 하면서 이런 얘기들은 풍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재산 정리시점도 예상보다 빨라졌다. 최근 여권이나 야권엔 ‘신당론’이 난무하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 뜰 거란 관측까지 파다하다. 안 원장 자신이 신당의 진원지로 지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예민한 시기에 예민하게 해석될 만한 결정을 안 원장 스스로 내린 셈이다. 내년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에 임박해서 재산을 정리하기보단 가급적 조기에 환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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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각축을 벌이고 있는 그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는 행위를 정치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007년 7월 한나라당 경선 후보시절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330억원 상당의 재산 사회환원을 처음 약속한 것이나 정몽준 전 대표가 8월 범현대가와 함께 5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키로 한 것을 연상시킨다. 안 원장이 지난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의사를 내비치며 등장했을 때부터 그의 재산은 정치권의 관심사였다. 재산은 ‘성공한 벤처 CEO(최고경영자)’라는 ‘신화’의 소재이면서도 정치적으론 ‘족쇄’가 될 수 있다. 부와 권력을 동시엔 쉽게 쥐여 주지 않는다는 게 한국 정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족쇄’를 하나 정리한 것인 만큼 대권가도에서 안 원장은 운신하기가 편리해진 측면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안 원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불신을 당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 문제다. 안 원장은 이를 명분으로 사재 1500억원을 환원하면서 기존 정치권과 다른 ‘공적 헌신성’을 부각했다. e-메일에서 ‘서민’과 ‘양극화’를 거론한 것도 정치적 언급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e-메일에서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 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는 건강한 중산층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거나 “(저소득층 청소년들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회를 보장받지 못한다”고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은 그가 앞으로 어떤 정파와 노선을 취할지 드러내 보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여권과는 여전히 각을 세우고 있는 듯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친박근혜계의 한 재선의원은 “진정성이 안 보이는 행동”이라며 “정치하려는 데 부담이 돼 재산을 내놓는다고 해야지 자선 사업가처럼 구는 건 오히려 더 정치적”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의원은 “안 원장이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번 재산 환원도 정치권 검증에 대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민주당 이용섭 대변인은 “안 원장이 앞으로 정치를 하든 안 하든 사회에 보탬이 되는 ‘큰 정치’를 이미 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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