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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그리스를 보는 꼴통과 깡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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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배고픈 바보가 시장에 갔다. 순대와 떡, 김밥까지 사 먹었는데 통 배가 부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엿 한 쪽을 사 먹자 배가 찼다. 그러자 하는 말.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엿만 사 먹을걸.”

 오래전 들었던 얘기다. 뜬금없게도 이게 남유럽 재정위기를 놓고 벌어진 복지논쟁에 이끌려 떠올랐다. 지금까지 나온 말들을 종합하면 이렇다. ‘그리스는 복지병으로 망했다더라’ 하는 거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 맞는 말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바보가 생각한 엿과 같다고나 할까.

 결론부터 말해 그리스는 복지천국이 아니다.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역시 아니다. 며칠 잠시 둘러보러 온 외국인에겐 두툼한 연금봉투가 유난히 눈에 띌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복지수준으로 치면 그리스는 북유럽에 비해 한참 뒤진다. 유난히 뻑적지근한 복지혜택을 누리는 나라로는 볼 수 없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대 초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약간 넘는다. 이탈리아의 경우 그리스보다 조금 높고, 스페인은 조금 낮다. 남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평균치 근처에 올망졸망 몰려 있다.

 유럽엔 이들보다 복지지출을 훨씬 통 크게 하는 곳이 많다. 스웨덴의 복지지출은 GDP의 30%가 넘는데도 문제가 없다. 독일도 그리스보다 복지지출이 훨씬 많다. 복지가 정말 망국병이라면 스웨덴이나 독일의 건재는 어찌 설명할 건가. 그리스엔 이렇다 할 제조업이 없다. 관광과 해운이 축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자 타격을 입었다. 그리스 위기는 기본적으론 산업 경쟁력의 취약성이 몰고 온 결과다. 제조업이 강한 독일과 스웨덴이 버티는 것과 대조적이다.

 남유럽의 소위 PIGS 국가들이 다 비슷하다. 산업 경쟁력의 조락(凋落)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 유럽 중에서도 취약한 지역이 남유럽이다. 그중에서도 허약한 곳이 그리스다. 약한 외곽의 둑부터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복지가 한몫 거든 건 분명하지만, 그걸 단독정범으로 몰기는 어렵다.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금리와 환율로 거시경제를 조절할 권한을 놔버린 것도 결정타였다. 수출이 안 돼 적자가 나면 환율이 오르고, 이게 다시 수출 경쟁력으로 이어져 자기 면역 기능을 하는 법이다. 또 여차하면 금리를 높여 내핍과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통화에 묶이면 이게 안 된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건인데도, 그리스는 방만한 재정을 단속하질 않았다. 그뿐인가. 지하경제도 성행한다. 다운계약서는 상식이고, 신용카드도 꺼린다고 한다. 탈세는 절세로 통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적자가 쌓이는데 복지지출을 ‘무리하게’ 계속한 게 악수였다. 이쯤 되면 지출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수지의 균형이다. 많이 내면 많이 받아도 되고, 덜 내면 덜 받아야 하는 법이다. 벌이와 씀씀이가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건 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복지지출을 GDP의 10%만 해도 수지를 못 맞추면 망하고, 30%나 잡아도 수지를 맞추면 견딘다. 경제력이 받쳐주기만 하면 선택하기 나름이다.

 복지지출은 단계적으로 늘려야 하고, 그 부담능력, 즉 경제력은 성장을 통해 키워야 한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 명제다. 살림이 펴야 복지도 있는 거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 여기에 남유럽 사정을 거칠게 끼워 맞추나. 그러다 보니 원래의 참명제가 의심받는 거다. 보편적 복지를 암송하는 선무당들에게 멍석을 펴주는 셈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해선 곤란하다. ‘복지는 안 된다’며 꼴통처럼 자빠질 이유도, ‘복지가 살길’이라며 깡통처럼 핏대 올릴 필요도 없다. 지금 남유럽 위기의 원인을 놓고 서로 삿대질하는 꼴통과 깡통들은 엿 타령 하는 시장통의 바보와 다를 바 없다. 엿을 먹어도 뜻을 새겨가며 먹자.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