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남긴 파바로티 '평화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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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황금시간대에 야외 클래식 공연을 TV로 생중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연주자나 관객 모두 20분 이상 필요한 중간 휴식시간을 처리하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광고나 해설, 공연장 스케치로 채웠다가는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들이 늘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다른 묘책은 없을까.

지난달 30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소프라노 카르멜라 레미지오가 출연한 'MBC 평화콘서트' 는 연주자와 오케스트락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중앙 무대 양편에 만들어 놓은 부설 무대에서 막간 이벤트를 펼치는 방법을 택했다. 대형 야외공연장의 생생한 감동을 안방에 동시에 전달하면서 휴식시간에도 관객과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겠다는 의도였다.

불꽃놀이와 레이저쇼로 시작된 무대는 거의 40분 가량 계속됐다. 경기명창, 색소폰, 전자바이올린, 태평소, 타악기, 성악, 합창, 설장구 합주 등이 차례로 등장해 〈아리랑〉 〈엄마야 누나야〉 〈아리랑 변주곡〉등을 들려 주었으나 예술적 완성도와는 거리가 먼 무대였다.

파바로티의 노래를 듣기 위해 직접 공연장을 찾은 관객이나, 채널을 고정시킨 시청자들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일이었다.
특히 사회자의 반강제적인 유도로 모두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때는 관객을 TV 생방송의 들러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주최측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중간 휴식시간에는 관객들이 오랜만에 야외 음악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고 TV 시청자들에게는 9시 뉴스를 내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전쟁 50주년과 남북정상회담 성공을 기념하는 '평화음악회' 라는 테마는 좋지만 어설픈 이벤트 때문에 연주회가 망가진다면 문제다.
드라이아이스와 레이저쇼, 불꽃놀이 등 물량공세로 허전한 무대를 채울 수는 없는 법이다.

거구를 이끌고 무대에 나온 파바로티는 무대에서 연이어 2곡 이상을 부르지 못했다. 숨가쁘게 아리아를 한 곡 부르면 소프라노 독창이나 서곡 연주 동안 휴식을 취해야 했다.

수원시향을 지휘해 국내 정상급 사운드를 이끌어낸 레오네 마지에라는 파바로티가 숨가빠 하는 표정이 역력하면 긴 음표도 빠르게 처리해 다소 음악이 일그러졌다. 나이가 들어 호흡의 여유가 없었고 고음에서 비브라토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토스카' 중 '오묘한 조화' 라든지 '팔리아치' 중 '의상을 입어라' 등에서 파바로티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또 무대를 로열 박스측에 길게 배치해 메아리의 시간차나 볼륨으로 인한 거슬리는 소리도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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