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파뿌리를 다리면 감기약이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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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늦가을 날씨가 여름처럼 더웠다가 다시 쌀쌀해지는 등 변화가 심하다. 이런 날씨가 지속되면 감기에 걸리기 쉽다. 감기에 좋다는 민간요법이 많은데 이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틀린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파뿌리를 깨끗이 씻어 생강, 말린 귤껍질을 넣고 다려 먹으면 초기 감기에 좋다.” “배의 꼭지를 둥글게 도려내 속을 파내고 그 안에 꿀과 생강, 대추 등을 넣은 뒤 약한 불에 다려서 즙을 내어 먹거나 그냥 과일 먹듯이 먹으면 감기에 좋다” 등이 그런 사례다.

 ‘다리다’는 옷이나 천 따위에 진 주름을 없애기 위해 다리미나 인두로 문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깨끗하게 다린 흰 와이셔츠를 입은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다리미로 눌러 다려 빳빳이 줄을 세운 군복을 차려입은 병사들의 모습에서는 휴가를 앞둔 설렘이 묻어나왔다”처럼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달이다’는 “간장은 된장을 발효시킨 뒤 소금물을 따라 내 달여서 만든다”에서처럼 ‘액체 따위를 끓여서 진하게 만들다’, 또는 “한약을 달일 때는 약탕관을 쓰는 게 좋다”에서처럼 ‘약재 따위에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파뿌리는 아무리 ‘다려도’ 감기약이 되지 않는다. ‘달여야만’ 비로소 약으로 쓸 수 있다. 서두에 소개한 예문들도 ‘귤껍질을 넣고 달여 먹으면’ ‘약한 불에 달여서’로 고치는 게 옳다. ‘옷을 다리미로 달이다’처럼 쓰는 오류는 거의 보이지 않고 ‘한약 등을 달이다[달이면, 달여]’를 ‘다리다[다리면, 다려]’로 잘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것만 주의하면 되겠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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