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 2000] 클루이베르 "자책골" 양심선언

중앙일보

입력

"세번째 골은 내가 넣지 않았어요. "

26일(한국시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고와의 8강전에서 골세례를 퍼부으며 네덜란드를 4강으로 끌어올린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의 양심선언이 세계 축구계에 신선한 감동을 일으켰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27일 유고전 비디오 분석 결과 클루이베르트가 득점한 것으로 인정했던 세번째 골은 그의 말대로 유고 수비수의 발을 맞고 들어간 것으로 결론짓고 클루이베르트의 통산 득점을 6골에서 5골로 정정했다.

클루이베르트는 당시 세번째 골이 터진 직후 스페인 주심에게 "내가 넣지 않았다" 고 밝혔으나 주심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클루이베르트의 득점으로 인정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양심선언을 했으나 대회 주최측은 난데 없는 주장에 당황하며 즉각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 뒤 이를 정정하게 됐다.

양심선언으로 한 골을 빼앗긴(?) 클루이베르트는 유고전 3골을 포함, 대회 통산 5골로 사보 밀로셰비치(유고)와 공동 선두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 도움으로 3골이나 넣었으니 만족한다" 고 말했다.

국제축구대회에서 이같은 양심선언은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 이다. 더구나 6골이면 득점왕이 사실상 굳어지는 상황이라 클루이베르트의 행동은 더욱 높이 평가된다.

1986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핸들링 골을 넣고도 "신의 손이 넣었다" 고 둘러댄 마라도나(아르헨티나)의 예에서 보듯 선수들은 승부와 골에 집착해 페어플레이 정신을 외면하기 일쑤다.

스페인 명문클럽 바르셀로나의 주공격수로 뛰고 있는 클루이베르트는 다혈질 성격으로 감독과 자주 마찰을 빚어왔고 98년에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며 '축구도 잘하고 매너도 좋은 선수' 로 전세계 매스컴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해프닝은 지난 4월 국내 프로축구 '이원식 가짜골 파동' 과 대비된다. 당시 이원식(부천 SK)은 동료 골을 가로채려다 TV화면을 통해 들통이 나는 바람에 축구팬들에게 질타를 당하고 벌금 80만원까지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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