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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한반도 평화의 새 날이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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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일(金正日·58)
국방위원장이 실제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것은 3월 5일 평양에서였다. 뉴스위크의 확인에 따르면 그날 중국 대사관을 방문한 그는 자신이 가져온 와인을 들고 농담을 나누며 중국 대사관 직원들과 일일이 건배했다.

중국 대사관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한 기업인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 북한이 양국간 교역에 쓰이는 철도 컨테이너를 중국측에 돌려주지 않은 일이 빈번했음을 사과했다.

그는 놀란 중국 외교관들에게 “우리가 컨테이너를 돌려주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우리 때문에 골치 아팠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의 4시간에 걸친 중국 대사관 방문은 지난달 그의 베이징(北京)
방문의 길을 터놓았다.

그것은 예행연습에 불과했다. 북한의 ‘은둔자’ 김정일은 지난주 평양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초대함으로써 국제 무대에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인민복 차림의 金은 위협적인 독재자라기 보다는 흡사 별난 행사 진행자처럼 행동했다.

공항에서도 그는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하는 북한의 환영인파 속에서 나타나 자신의 ‘숙적’인 金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았다. 두 지도자는 환한 웃음과 다정한 악수를 교환한 뒤 리무진을 타고 시내로 가는 동안에도 서로 두 손을 꼭잡았다.

3시간 동안의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4일 김정일은 남한 기자들에게 농담도 했다. “외신과 구라파 사람들은 내가 은둔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진행되면서 기분이 한껏 고조된 金위원장은 자신의 주량에 관한 소문을 별것 아닌 것으로 웃어넘겼고(그는 공식 만찬에선 와인 10잔을 마셨다)
북한의 냉면 맛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6월 15일 오찬을 마친 뒤엔 金대통령을 공항까지 환송한 후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활주로에 선 채 손을 흔들었다. 서울에선 ‘김정일 쇼크’란 표현이 신문 머릿기사에 등장했고, 金대통령은 도착 성명에서 “새로운 날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김정일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할리우드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치밀함으로 정상회담을 연출함으로써 남앞에 나서기를 싫어하고 광적이며 은밀한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했다. 또한 회담이 끝난 뒤엔 실행될 경우 세계 최후의 냉전 대치상태를 종식시킬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선언문은 핵심사항인 통일에 대해 특히 모호하게 표현됐지만 고무적이었다. 한국전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의 재회와 남북 간 경제 및 문화교류의 확대, 그리고 ‘통일 문제에 대한 자주적 해결’을 위한 기본틀이 제시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언문 마지막 조항으로 김정일이 답방 성격의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적절한 시기??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돼 있다. 김영수(金英秀)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그것은 마치 달의 어두운 면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면서 “우리는 김정일을 기인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그가 개방적이고 솔직하며 직설적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가 50년 간의 쓰라린 정치적 교착상태를 타개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서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장완(43)
씨는 “내 생애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번 일은 어쩌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나라 국민들이 들은 것 중 최고의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은 곧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어 있고, 남한 기업인들은 북한 진출의 기대로 들떠 있다. 게다가 수백만 명의 국민들은 통일이 임박했다는 지극히 낙관적인 생각에 잠겨 있다. 金대통령은 그같은 낙관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속히 나섰다.

그는 정상회담 후 행한 첫 연설에서 우리의 우선 목표는 ‘공존과 공영’이라면서 통일엔 “시간이 걸리며 따라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전문가들도 같은 생각이다. 이정민(李正民)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정일은 우리에게 자신이 기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지만 그렇다고 통일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역사적 전환점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평양에서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김정일은 전세계를 향해 실패한 공산정권이 생존을 위해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1970년대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처럼 공식적인 이념의 테두리 밖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바로 아버지 김일성(金日成)
이 주창했던 주체사상을 탈피하는 일이다. 현재 북한은 외국투자 유치를 위해 애쓰는 한편 자본주의체제를 원용한 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최고 기술관료들을 외국에 보내 서구 스타일의 회계·금융·무역을 배우게 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이미 이탈리아 및 오스트레일리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클린턴 정부도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대부분의 교역과 투자를 허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번 방북단에 포함됐던 문정인(文正仁)
연세대 교수는 “북한은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그곳에서 개방의 징조를 보았다”고 말했다.

남북한은 관계개선을 서서히 추진해야 한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양측을 모든 면에서 분열시켰다. 지금도 1백만 명이 넘는 양국의 육·해·공군 병력이 대치상태에 있어 언제든 교전 발생 소지가 있다. 특히 북한은 대량의 생화학무기를 비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남북공동성명(72년)
과 남북기본합의서(91년)
도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시 말해 50년 간의 적대관계 종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적대관계 종식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반체제’ 인사와 정치범을 거쳐 결국 대통령이 된 격동의 삶을 사는 동안 그는 줄곧 군사적 해결책을 반대하고 대화와 평화를 지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에 힘써 왔다.

그는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펼쳤다. 그것은 민간 차원의 대북 투자와 관광사업을 유발했고, 해빙 무드를 불러 왔다. 일부 한국내 비판론자들은 金대통령의 북한 ‘짝사랑’을 조롱했지만 그는 계속 유화노선을 견지했고, 결국 북한측의 정상회담 수락을 이끌어냈다.

북한의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지난 3월 북한 경제 재건을 돕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골자로 한 金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이었다.

김정일에게 그 선물은 거절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북한은 이미 경제붕괴와 치명적인 기근으로 세계의 ‘거지 국???전락했다.

요즘 북한은 대부분 중국이 지원한 구호곡물과 연료로 연명해가고 있다. 남한의 개발 전문가들은 북한이 낙후된 농장과 공장, 전력망을 복구하는 데만도 1백억 달러 이상의 외국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로선 부담하기 벅찬 액수다.

결국 김정일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한 및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방국들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동유럽의 사회주의 몰락 과정을 지켜본 그가 전체주의 국가 북한을 과도하게, 또는 지나치게 빨리 개방시킬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될 경우 통제력 상실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 양측은 통일에 대해 다소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선언문은 서로 상충되는 제안을 간단히 언급했을 뿐 통일을 위한 협상 의제나 시한을 못박지 않았다.

선언문에 따르면 북한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권력을 남북한 정부가 각자 갖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지지하는 반면 남한은 중앙정부는 대체로 의례적 기능만 갖고 남북한이 독자적으로 군사·외교권을 행사하는 ‘연합제’를 지지한다.

金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난 뒤 쌍방의 의견이 매우 근접했으며 “공통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이같은 金대통령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거북한 사실이 있다. 바로 신속한 통일이 가능하다 해도 남한으로선 그것을 받아들일 태세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을 경제적 난국에서 구하려면 1조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 일례로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의 국민소득은 동독의 배였다.

그러나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월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남한은 북한의 1백 배에 이른다. 남한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수입 양주를 마시는 동안 많은 북한인들은 당장 먹을 것 걱정을 하고 있다. 기근이 북한을 휩쓸고 간 1995년 이래 기아로 사망한 북한인들은 1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金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에서 통일 이전에 북한 경제를 효과적으로 재건할 계획을 간략히 밝혔다. 지난주 한 미국 정부관리는 “한반도 최악의 상황은 전쟁이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최악인 것은 북한이 현상태에서 남한과 갑작스레 통일을 서두르는 일이다”고 말했다.

북한은 두 가지 모두를 얻고자 한다. 김정일은 중국의 초기 자본주의 실험과 유사한 모델에 따라 외국인 투자를 특정 지역에 제한하려 한다.

변화의 물결이 주민들에게 번져 체제가 위협받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90년대 초 북한의 러시아·중국 접경지대에 설치된 나진·선봉 경제특구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북한은 그곳의 수심 깊은 항만시설과 중국으로의 무관세 환적(換積)
서비스 외에도 관광객들을 위한 카지노가 있다는 것까지 선전하고 있다.

다른 예로 현대그룹의 금강산 유람선 관광을 들 수 있다. 1998년 현대는 6년에 걸쳐 9억 달러를 지불하기로 하고 금강산을 휴양과 컨벤션 센터로 개발하기 위한 독점권을 획득했다. 그로부터 30만 명에 육박하는 남한인들이 그곳을 다녀갔지만 북한 주민과의 접촉은 철저하게 차단된 상태였다.

한국의 4대 재벌들도 역할 모색에 분주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한 그들 기업의 경영인들은 북한의 여러 공장들을 방문했다. 현대는 이미 북한의 서해안에 대규모 공단을 조성하겠다고 신청한 상태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에 매력을 느낄 수백 개의 남한 중소기업을 그곳에 유치한다는 것이다. 남북 교역은 1999년 3억4천만 달러로 50%나 신장했다. 그러나 세밀한 무역 법규와 직접 교통망의 미비로 남북 교역은 여전히 고비용·고위험을 수반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남한은 휴전선을 관통하는 25km의 철도 복구를 제안했다.

남한에서 가장 절실한 인도적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약 2백만 명에 달하는 이산가족들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 생존자 대다수가 이제는 60∼70대의 고령이지만 아직도 그들은 죽기 전에 헤어진 가족을 만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번의 공동선언은 이산가족상봉 재개 시한을 8월 15일로 명시했다. 북한의 승낙을 유도하기 위해 남한은 비전향 장기수 50명 가량의 북송을 약속했다. 또 남한은 북한에 억류된 수백 명의 전쟁포로를 귀환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현재 북측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전향 장기수와 전쟁포로를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지연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 외에도 커다란 걸림돌들이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과 남한의 대미·대일 관계다. 북한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남한과 미국·일본의 긴밀한 관계는 사실상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해가 되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2백50km 휴전선을 따라 배치된 군병력의 감축 논의가 있었는지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또 북한이 줄기차게 제기해온 3만7천 명의 주한 미군 문제가 어떻게 거론됐는지 양측은 언급을 피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김정일이 융통성있는 지도자로 면모를 드러내자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前 국방장관)
의 주장이 정당화됐다. 1년 전 평양을 방문한 그는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 후 클린턴 행정부는 대북 협력을 강화해왔다.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페리는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 중지와 호전적인 자세를 완화하겠다는 보장의 대가로 대북 무역제재 해제 및 관계 증진,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정상 외교관계 수립을 주장했다.

그것이 실현된다면 ‘비이성적인’ 독재자들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가 계획한 6백억 달러 규모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는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이제까지 김정일은 비이성적 지도자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그의 온화하고 자유분방한 새 이미지는 미사일을 둘러싼 긴장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지금 정상회담에 대한 낙관적인 지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미사일 방어 논쟁은 주한미군 기지를 둘러싸고 불붙기 시작한 반미감정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남한의 일부 주류 지식인들은 주한 미군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평화 정착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할권 확대를 요구하는 1백27개 시민단체 연합을 이끌고 있는 경실련 통일협회의 차승렬(車承烈)
부장은 “남북이 화해함에 따라 미국 정부는 미군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것이 타당한지 미국 국민에게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세심한 균형감각을 발휘해 이렇게 말했다. “정상회담은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최선의 희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협상은 전쟁 억지수단이 마련돼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도 온건 노선을 견지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정일의 인상적인 모습도 테러를 사주하고 테러국에 미사일을 팔아온 전력까지 지워주지는 않는다. 또 단 한번의 정상회담이 반세기 동안 누적된 문제들을 일거에 해소할 수는 없다. 직접 교류와 상호 군비축소, 그리고 휴전선을 철폐하고 남북이 하나가 되기 위한 진정한 공동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변화들이 성사되려면 단 몇 개월이 아니라 수 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시작일 뿐이며 구체적 내용보다는 상징성에서 의의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새 시대를 예고한 것으로는 손색 없을 듯하다. [뉴스위크=George Wehrfritz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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