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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폐허에서 화해 상징으로 …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부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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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16면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독일 드레스덴엔 수많은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연합군 공군의 폭격으로 주요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고 소련의 붉은군대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난민들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었다. 중세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가 폭격을 면했다는 사실이었다. 드레스덴도 오랜 역사의 문화도시로 산업시설은 별로 없었다.

기대는 어긋났다. 2월 13일 밤부터 영·미 공군이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폭격은 이틀간 계속되었다. 최소 6만 이상의 시민이 사망하고 ‘엘베 강의 피렌체’ 드레스덴은 벽돌무더기로 변하고 말았다. 하나의 돔으로 이루어져 ‘돌로 만든 종’이라 불리던 아름다운 성모교회도 파괴되고 말았다. 1736년, 막 완공되었을 때 바흐가 작센 왕을 위해 오르간 연주를 했던 교회였다. 교회는 이틀간 용케 폭탄을 피했으나 65만 발이나 떨어진 소이탄의 불길을 버티지 못했다. 1000도가 넘는 열에 가마 속의 도자기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교회는 15일 오전 10시 폭발하듯 주저앉았다.

전후 동독 정부는 옛 궁전과 오페라하우스 등 몇몇 건물은 복원했으나 성모교회는 잔해더미 그대로 방치했다. 연합군의 만행을 보여주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통독 이후 교회의 복원 시도는 본격화되었다. 독일에 기구가 설치되고 영국과 미국 등 세계 20여 나라가 동참했다.

복원에는 파괴된 건물의 원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기로 했다. 지상 최대의 모자이크 그림 맞추기가 시작되었다. 잔해에서 수습한 석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위치를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3800개의 검게 그을린 돌을 새 돌과 함께 쌓아올렸다. 교회의 외벽은 얼룩덜룩한 무늬로 완성되었다(작은 사진).

돔 꼭대기에 올려놓을 십자가는 영국인 장인 앨런 스미스가 제작했다. 그의 아버지 프랭크는 드레스덴 폭격 당시 영국 랭커스터 폭격기 조종사였다. 그가 만든 십자가는 5년간 세인트폴 대성당 등 영국 성당에 순회 전시되다 드레스덴으로 옮겨져 2004년 돔 꼭대기에 올려졌다. 전쟁을 겪은 드레스덴 시민들은 눈물을 흘렸다. 잔해에서 수습한 옛 십자가(큰 사진 오른쪽)는 교회 안에 전시했다. 2005년 10월, 성모교회는 전쟁의 상처를 씻는 화해의 상징으로 완공되었고 엘베 강변의 스카이라인도 옛 모습을 찾았다.

새로 문을 연 성모교회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 3년간 700만 명이 방문했고 현재도 관광객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2009년엔 독일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들러 더욱 유명해졌다. 사진은 평일에 교회를 방문한 관광객을 상대로 오르간 연주와 함께 약식 예배를 진행하고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는 모습이다.
사진글=최정동 기자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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