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킬러(PK)와 게임의 법칙

중앙일보

입력

출시를 앞둔 <디아블로2>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배틀넷의 많은 변화를 발견했을 것이다.

특히 다른 멀티플레이 게임 서버에서 발견하지 못한 점이 있는데 바로 레벨 제한을 방장이 둘 수 있게 해서 레벨이 비슷한 사람끼리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이는 <레인보우 식스>나 <스타크래프트>같은 게임들이 유저의 실력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나지만 온라인 게임이나 롤플레잉 게임을 여러 사람이 진행할 경우 유저의 실력보다는 게임상의 캐릭터의 레벨이나 장비에 따라 승패가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점 때문에 온라인 게임에서 게임을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아이템에 집착을 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아이디를 해킹하기도 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템을 쉽게 얻는 방법은 역시 상대방 캐릭터를 죽이는 방법이 있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이러한 PK(Player Killer 혹은 Player Killing)를 근절하기 위해 다른 플레이어와 다른 색으로 표시하여 구별시키거나 벌점을 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PK는 온라인 게임에서의 전투나 교역과 같은 일정한 행위로 인정하여 PK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리니지>에서는 선량한 캐릭터를 죽이게 되면 '카오'라는 것이 캐릭터에 걸리게 되고 이것을 푸는 방법을 마련하는 식이다.

<디아블로>는 캐릭터 정보를 개인컴퓨터에 저장하게 되어있어 트레이너 등의 프로그램으로 쉽게 레벨이나 다른 사람들이 찾아낸 아이템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점들은 2편에서 서버에 저장함으로써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1편에서는 상대방과 적대, 우호관계를 설정과는 관계없이 던전에서 공격이 가능해서 저레벨 게이머들이 수난을 당했지만 2편에서는 위에 언급했던 레벨제한과 던전에서는 적대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공격이 되지 않아서 상대방을 급습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PK 때문에 초보자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PK를 근절하기 위해 PK들의 이름을 실어 현상수배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들도 늘고 있고 PK를 잡기 위한 PKK(Player Killer Killer)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아이템을 빼앗기 위한 목적보다는 다른 캐릭터를 죽이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PK 행위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게임에서 게이머들의 분신인 캐릭터는 보통 '아바타'라고 불리는데 이는 인도신화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현세에 나타나는 신을 말한다. 아바타들이 게임상에서 게이머와의 동일화가 얼마나 잘 되는가가 게임의 성공의 척도이기도 하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게임에서의 아바타는 한 인간의 개성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아바타들을 죽이는 행위는 현실에서 금지된 일을(물론 게임에서도 금지되어 있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자유롭다) 한다는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게임의 법칙을 벗어난 것중에는 PK와 함께 <스타크래프트>로 이름을 날린 맵핵이 있다. 맵핵을 이용해 상대방의 진영을 보면서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맵핵보다 더욱 게이머들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게임중의 동맹파기이다. 팀플레이시 자신에게 전세가 불리해질 때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상대편으로 진영을 바꾸는 일은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처음부터 동료들과 계획을 짜고 상대편 진영에 있다가 게임도중에 동맹을 파기하게 되면 상대방팀은 수적으로 열세가 되는 것보다 배신을 당했다는 정신적인 데미지(?) 때문에 게임의 밸런스가 무너져 경기가 엉망이 된다.

초기에는 단순히 승수를 올리기 위해 이런 일들이 자행되었지만 요즘에는 게임자체를 파괴하기 위해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패치 등으로 맵핵같은 치트 행위가 사라져도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결국 게이머들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몇 달전 게임잡지에서는 '파이어'라는 아이디를 쓰고 게이밍 존에서 <레인보우 식스>게임으로 활약하던 한 게이머가 현상수배된 일이 있었다. 몇 차례의 한일전에서 총기제한을 어기는 일본게이머들을 만나서 한국게이머를 보호하고 자신은 죽었다는 이 게이머는 일약 영웅이 되어 수많은 아류 '파이어'들을 나타나게 했다. 이 '파이어'라는 게이머처럼 아직도 게임세계에서는 페어플레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게임을 즐기는 일이 많아진 만큼 게임매너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 시기가 왔다. 전세계 게임대회에서 상위에 입상하는 한국게이머가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한 게임에서도 한국인들은 우수한 게임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 만큼 게임매너에 대한 지적도 다른 나라보다 많은 편에 속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두뇌싸움을 벌이는 것이 멀티플레이의 매력인 만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정당하게 경쟁하는 문화가 정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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