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홀로서기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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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는 26일 요즘들어 가장 흥분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현대자동차와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전략적 제휴 발표 이면에 `전문경영인'으로서의 면모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는데 내심 의미를 두고 있는 눈치가 역력했다.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 석상에서 전례없이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겸허한 마음으로 사업에 계속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확답을 내놨다.

지난달 31일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3부자 동반퇴진 선언을 거부한 이후 정 회장의 입지는 `사면초가'였다. 부친의 명(命)을 거스른 모양새도 문제려니와 특히 재벌해체의 신호탄으로 평가된 3부자 동반퇴진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점에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미국출장을 통해 연료전지 기술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거나 국제 자동차학술대회를 개최한 것도 `약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MK는 이번 발표를 정점으로 수세국면을 일거에 반전시켰다고 자평하고 있는 분위기다. 세계 빅5에 드는 다임러와의 전략적 제휴를 맺는 모습이 대내외적으로 비쳐지면서 명실공히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는 것이다. MK의 한 측근은 "다임러와의 제휴는 현대는 물론 우리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높이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정 회장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 일각과 여론의 정 회장 퇴진압박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는게 MK측의 기대다.

하지만 MK로서는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관측이다. 우선 `홀로서기' 수순인 자동차 소그룹 계열분리 문제가 깔끔히 정리되지 않았다는게 현대차 주변의 시각이다. 정 전명예회장의 자동차지분 문제가 여전히 계열분리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다만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3% 미만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던 정부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지고 있다는 징후가 발견된다. 현대 구조조정위원회가 이날 현대건설 보유 현대차 지분 2.1%를 정 전명예회장에게 넘기는 지분정리를 한 것도 정부와의 사전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위원회 관계자는 "2∼3일 안에 계열분리 신청을 낼 예정"이라며 "명예회장 지분문제에 관해서는 공정위와 협의가 잘 되고 있다"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계열분리가 해결되더라도 정 전명예회장의 지분 9.1%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구조조정위는 "그룹차원에서 자동차를 접수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말했지만 현대차 주변에서는 정 전명예회장 지분과 연결짓는 시각이 여전하다. 정 전명예회장의 지분이 경우에 따라 반(反)MK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MK의 자동차 우호지분은 19%로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을 수준이지만 최근 증시 주변에서 역외펀드를 통해 현대차지분이 집중적으로 매집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현대차 관계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 현대차가 다임러(10%)와 미쓰비시(4.8%)의 지분이 우호지분임을 유독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시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임러와의 합작사업 성공여부도 MK로서는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성패를 가름하는 주요 과제다. 현대가 과연 얼마나 대등한 관계로 다임러와의 제휴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런지는 전적으로 MK의 협상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가 다임러에 종속되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고 다임러로부터 현대가 원하는 기술을 내주지 않고 단순히 이용만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휴사업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할당된 몫이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MK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퇴진을 종용했던 부친인 정 전명예회장으로부터 어떤식으로든지 `승인'을 받아내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MK가 이번 발표를 계기로 조만간 정 전명예회장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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