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여의도·예술의전당 그린 김석철 … 한반도 새 하드웨어 설계 나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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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건축과 도시의 인문학
김석철 지음, 돌베개
304쪽, 1만6000원

“30대에 여의도를 그리고, 40대에 예술의 전당을 그렸다.”

 이 한 줄이면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겠다. 도시설계자이자 건축가인 김석철씨(67·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명지대 명예 건축대학장)다. ‘인문학이 건축과 도시설계의 중심이며, 건축 역시 인문학이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책은 40년 동안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종교와 철학책을 섭렵하고 건축을 몸으로 체험해온 여정을 오롯이 담았다. 도시 설계자의 시각으로 비춰주는 고대문명의 집 이야기부터 중세,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의 도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이야기에 아직도 공방이 뜨거운 ‘4대강’, 한반도 공간 전략에 대한 구상까지 밝히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김씨는 유럽이 세계 문명의 표준이 된 이유를 중세 도시에서 찾는다. 일부 역사가들은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말하지만, 그에 따르면 중세는 빛의 시대, 시민의 시대였으며, 당시에 만들어진 도시야 말로 최고의 상형문자라는 주장이다. 대학을 포함해 르네상스의 모든 요소들이 사실상 중세에 태동됐으며, 최소의 에너지를 쓰면서 최고의 삶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운하로 서로 연결되는 어반 네트워크, 걷기 좋은 도시였고, 사람을 모여들고 만나게 하는 광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미래 도시 설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중세 문명에 대한 그의 통찰은 경주 재생과 서울의 사대문안 특구 설치 제안(95~101쪽), 나아가 개성과 서울을 하나의 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포함하는 한반도 인문학으로 이어진다.

 그는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가운데에 한강이라는 거대한 자연이 흐르고 있으나 정작 도시 곳곳은 콘크리트의 사막같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중세 최대의 걸작’인 서울(한양)을 역사와 지리·문화 공간을 한데 모은 인프라, 즉 광장과 거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북한산이 광화문, 대한문 광장으로 이어지고, 남산을 지나 한강에 닿아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와 역사, 철학을 넘나들면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띈다. “지식인들은 대부분 책을 읽어 지식인이 된 것이지, 도시 문명의 다양한 면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꼬집었고, “요즘 나오는 건축책을 보면 철학책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건축 기술만을 다룬 『건축 사서』를 보면서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야 말로 위대한 인문학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고 적었다.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지금 진행되는 ‘4대강 살리기’에는 한반도 하드웨어에 대한 일관된 비전이 없다”고 지적하며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의 각 강별 특성을 제대로 살리고, 강별 문제점을 정확히 해결하는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4대강 주변은 놀이 공간이 아니라 21세기 한반도의 도시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한반도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고민하지 않는 것도 책임 있는 자세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몇 년째 암(癌)과 싸우면서 일을 계속해오고 있는 그는 책에 “몸과 마음이 하나인 것을 알면 늦은 것입니다”라고 털어놨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힌 대목이지만, 이 말은 인문학과 건축·도시가 하나임을 강조한 뜻으로 읽힌다. “국토 기획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집합해야 하는 분야다. 정치권 학자들 말고, 여러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들이 4대강 논의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는 주문이 여운을 남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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