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어, 나를 길들여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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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말했다.
"안녕." 어린 왕자는 얌전히 대답하고 몸을 돌렸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여기 사과나무 밑에 있어." 좀 전의 그 목소리가 말했다.
"넌 누구지? 넌 참 예쁘구나…"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난 여우야." 여우는 말했다.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제의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여져 있지 않거든." 여우가 말했다.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본 후에 그는 다시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너는 여기 사는 애가 아니구나. 넌 무얼 찾고 있니?" 여우가 물었다.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사람들은 소총을 가지고 있고 사냥을 하지. 그게 참 곤란한 일이야. 그들은 병아리들도 길러.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낙이야. 너 병아리를 찾니?" 여우가 물었다.

"아니야.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여우가 말했다.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일 거야.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가 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꽃 한 송이가 있는데… 그 꽃이 나를 길들인 걸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여우가 말했다.
"지구에는 온갖 것들이 다 있으니까…"
"아, 아니야! 그건 지구에서가 아니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몹시 궁금한 눈치였다.
"그럼 다른 별에서?"
"그래."
"그 별에도 사냥꾼들이 있니?"
"아니. 없어."
"그거 참 이상하군! 그럼 병아리는?"
"없어."
"이 세상엔 완전한 데라곤 없군." 여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내 생활은 너무 단조롭단다. 나는 병아리를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병아리들은 모두 똑같고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난 좀 심심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하게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다른 발자국 소리들은 나를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게 만들 테지만 너의 발자국 소리는 땅 밑 굴에서 음악소리처럼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은 먹지 않아. 밀은 내겐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아. 그건 서글픈 일이지! 그런데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정말 근사할 거야! 밀은 금빛이니까 나에게 너를 생각나게 할 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랫동안 쳐다보더니.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 줘!"하고 말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친구들을 찾아내야 하고 알아볼 일도 많아." 어린 왕자는 대답했다.
"우린 우리가 길들이는 것만을 알 수 있는 거란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아무것도 알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가게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들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이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참을성이 있어야 해." 여우가 대답했다.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다음날 어린 왕자는 다시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 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거든."

〈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지음, 소담 출판사, 78쪽∼8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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