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짓고보자' 재개발 아파트·단독주택 뒤범벅

중앙일보

입력

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 S아파트 건축 현장.

오래된 집들을 헐어낸 자리에 11~22층 짜리 아파트 8개동(5백61가구)건설이 한창이다.

주변 1백여 가구의 연립.단독주택들은 오는 11월 이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벌써부터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샌드위치' 꼴이 됐다.

이곳에서 만리재길을 따라 승용차로 3분 거리인 공덕2구역. 대형 트럭이 굉음을 내며 골재를 실어 나르고 거대한 기중기가 철근을 설치하고 있다. 16~22층 아파트 10개동 8백82가구가 들어서는 현장이다.

단독주택 주민 이경자(李京子.56.여)씨는 "아파트 건축으로 집에 금이 가고 마을이 두토막 났다" 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주변에 낡은 주택이 섞여 있는 바람에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2002월드컵 주경기장이 들어서는 마포구가 곳곳에서 재개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심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주택.아파트 혼재 지역' 이 무질서하게 생겨나 각종 도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 재개발.재건축 봇물〓마포구 24개동(38만여명)가운데 동교.서교.연남.성산동 등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아파트 건축열기에 휩싸여 있다.

노후.불량 주택을 헐고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사업 지구는 현재 20곳으로 강북권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이미 도화 1~4구역과 창전.공덕1.대흥구역 등 7곳에서는 7천9백여 가구가 입주했고 신공덕1~3지구.용강지구 등 6곳에는 4천1백여가구가 건설되고 있다.

또 신수.신공덕4지구 등 7곳에도 3천여가구가 들어선다. 여기에 연남동 연세맨션.중동 성산아파트 등 18곳에 재건축 사업승인이 이뤄져 4천1백22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1994년 1만2천7백86가구였던 아파트는 올 3월말 현재 2만1천1백94가구로 66%나 늘어났다. 2005년에는 3만여가구로 증가한다.

반면 단독주택은 5년동안 27%가 사라져 지금은 2만9천여가구로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께 아파트와 주택거주 인구 비율이 6대 4로 역전될 것이란 전망이다.

◇ 문제점〓재개발 구역은 ▶불량.노후 주택▶화재.침수 위험지역▶평균경사도 21도 미만인 곳 등에 거주하는 주민가운데 3분의 2이상이 동의하면 서울시가 지정한다.

그러나 불량주택 판정기준 등이 모호해 시세차익을 노린 가옥주들이 앞다퉈 재개발을 신청할 경우에도 효율적으로 가려낼 수가 없다.

마포구 관계자는 "지금까지 양적 확대에 주력해온 도심개발 영향으로 주민들의 재개발 욕구도 높아져 아파트를 계속 지을 수 밖에 없다" 고 말했다.

또 '도시계획' 을 내세우는 구청 차원의 도심개발 명분에 밀려 기존 주택가를 두부 자르듯 둘로 갈라 개발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교통영향평가가 의무화 돼있는 규모(연건평 5만㎡이상)이하로 대부분의 아파트단지들이 조성돼 교통대책이 허술하기 짝이없다.

지금도 상습체증을 빚고 있는 마포대로.신촌로 등 주요 도로가 최악의 교통지옥으로 변할 우려가 높다.

지역내 문화.체육시설이 거의 없어 주민들이 겪는 불편도 적지않다.

T아파트 주민 박미숙(朴美淑.52)씨는 "신도시와 달리 공원 등 휴식 공간이 별로 없어 주변 환경이 삭막하다" 고 말했다.

연립주택 주민 김옥자(金玉子.43)씨는 "빈촌(주택)과 부촌(아파트)이 뒤섞여 주민간 위화감이 많다" 며 "아이들도 서로 어울려 놀지않는 것 같다" 고 걱정했다.

◇ 전문가 의견〓서울시립대 이경재(李景宰.환경공학)교수는 "주택가에 아파트가 치솟아 도심 경관이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다" 며 "아파트 건축에 앞서 균형개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李교수는 ▶고급.일반 주택가로 지역을 세분화하고 ▶아파트단지 주변에 완충 녹지대와 공원조성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서울대 안건혁(安建爀.도시공학)교수는 "주택을 허무는 대신 개량하고 문화시설을 늘리는 등의 주택가 보존방안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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