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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플로리스트와 펜팔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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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플로리스트 루이 슐라모위츠(81)가 자신이 세계 정치지도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친필 사인이 곁들어진 사진 등이 들어있는 스크랩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뉴욕포스트]

"플로리스트와 카다피가 펜팔을?"

무려 42년 동안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와 서신교환을 한 뉴욕 플로리스트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주인공은 뉴욕 인근 브룩클린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루이 슐라모위츠(81).

지난달 31일자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슐라모위츠는 대상자를 `수준있게` 골랐다. 미국 33대 대통령이자 "리틀 빅 맨"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해리 트루먼과 이란의 시아파 정치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 등과 편지 주고 받아 스크랩북을 만들어 왔다. 그가 `모암마르빌리아(moammarbilia)`라고 부르는 그의 스크랩북에는 이들 세계 정치지도자이자 이슈가 된 인물들의 초상사진과 집무실에서 작성된 것이 분명한 친필사인이 적힌 편지들이 가득하다.

슐라모위츠의 펜팔은 인터넷 메일이 활성화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카다피와의 첫 인연은 1969년 카다피가 리비아 정권을 잡았을 때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는 좋은 펜팔 친구였고, 편지 속에서는 매우 친절했다"고 카다피를 회상했다. "유명인이 아닌 나에게 시간을 할애해서 편지를 썼고, 내 `중동 콜렉션`에 넣게 얼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니 바로 이메일로 사진을 부쳐주기도 했다". 이메일에는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도 첨부돼 있었다.

이 희한한 우정은 이후 크리스마스 카드도 서로 꼬박꼬박 보내고 미국과 이스라엘에 관한 시각을 주요 화제로 삼으며 더욱 심화됐다. 카다피는 두 페이지에 걸쳐 이스라엘과 미국 두 나라의 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직접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항공기와 무기를 제공하면서 팔레스테인 사람들에게 테러 공격을 가하고 있다"며 "미국이 우리를 공격해온다면 우리는 제 2의 베트남을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CIA가 보기에 이들은 "위험한 관계"였다. 이를 매우 골치아파한 첩보원이 몇 차례 방문해서 편지 교환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으나 카다피 이외에도 세계 정치인들과 주고받은 스크랩북을 보여주니 안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카다피의 인간적인 면모를 좋아한 슐라모위츠는 참혹한 시민학살등 그가 보여주는 이중성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1988년 히드로 국제공항을 출발해 팬암기의 공중폭발로 270명이 죽은 사건에 리비아가 개입된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후 편지 보내기를 중지했다. 그 후 23년간 그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6개월 전 리비아 폭동이 일어났을 때 우정의 발로로 마지막 편지 보내게 된다. 카다피가 뉘우칠 것을 충고한 것이다.
"당신이 당신 국민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결국 국민들이 당신을 돌보게 될 거요"

그 편지는 미개봉 상태로 반송돼 왔다. 지난달 20일 카다피는 리비아 시민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노인은 요즘 심경이 좋지 않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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