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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민노당 육탄 저지 후 철야 농성 … 남경필 “합의 서명해놓곤 비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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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1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한·미 FTA 비준안 표결이 무산됐다. 남경필 외통위원장이 회의실 앞에서 야당을 성토하고 있다. 민주당 김영록·김재균·유선호 의원(뒷줄 왼쪽부터)이 ‘재협상’을 외치고 있다. [김형수 기자]

2008년 12월 ‘해머 폭력’으로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31일 또 한 차례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한나라당 소속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회의장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국회 경위 30여 명을 투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협상이 결렬된 뒤 회의장을 점거하던 민주당·민노당 의원 40여 명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남 위원장은 회의장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김유정·김상희·김진애·전혜숙(이상 민주당)·이정희(민노당) 의원 등 야당 여성 의원들이 위원장실과 회의장으로 연결되는 길목을 가로막았고, 그걸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 위원장이 “의원들끼리 몸으로 막고 쪽 팔리지 않으세요”라고 하자 전혜숙 의원은 “저 쪽 안 팔리거든요”라고 대꾸하면서 남 위원장에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 다른 출입구에서도 경위들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남 위원장이 “비준안을 처리하진 않을 테니 회의만 하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40여 분간 실랑이 끝에 남 위원장은 “물리적 충돌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드린다는 생각에서 회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다음 기자들에게 “야당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였고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문에 서명까지 했는데 민주당이 이러는 것은 정말 비겁한 행위”라고 말했다. 이에 주변의 야당 의원들은 “재협상, 재협상”이라고 소리질렀다.

31일 오전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참여하라는 글이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이날 누리꾼들이 재전송한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국민은행으로 모이자’는 내용의 메시지. [김태성 기자]

 이에 앞서 여야 원내대표는 합의를 봤다. 전날 저녁부터 이날 새벽 1시까지 진행된 마라톤 협상에서 한나라당 황우여·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이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피해보전 직불제 기준 완화 ▶밭농업·수산업 직불제 시행 ▶농사용 전기료 적용대상 확대 등을 한나라당이 수용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무역조정지원 기업의 지원요건을 완화하며, 대형 유통시설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내용도 합의문에 포함시켰다. 최대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문제에 대해선 비준안 발효 후 3개월 안에 한·미 양국이 ISD 유지 여부 협의를 시작하고, 협의 시작 1년 안에 정부가 국회에 결과를 보고해 국회가 수용여부를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래서 ISD 문제를 빼면 민주당의 요구는 대부분 받아들여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합의문은 민주당에서 퇴짜를 맞았다.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우며 비공개로 4시간30분 동안 진행된 민주당 의총에선 “ISD는 사법 주권을 침해할 수 있어 꼭 폐지해야 한다. 원내대표 간 합의를 추인해선 안 된다”(정범구 의원)는 등의 강경론이 속출했다. 민노당도 “김진표 원내대표가 야당 대표들의 합의사항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결국 민주당은 “ISD 조항을 유보한 수정 동의안을 상정하면 몸싸움으로 막지 않겠다”는 내용의 한나라당이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외통위에서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해 가며 비준안 처리를 시도했으나 민주당·민노당의 강력한 저지에 부닥치자 일단 후퇴했다.

민주당 변재일·이종걸 의원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등 5명은 이날 밤 국회 외통위원장실에서 철야 농성을 벌였다.

글=김정하·강기헌 기자
사진=김형수·김태성 기자

여야 원내대표 간 한·미 FTA 합의내용

■ 한·미 FTA 발효 후 3개월 안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유지 여부에 대해 한·미 양국 간 협의 시작

■ 한·미 간 협의 시작 1년 안에 정부는 국회에 결과 보고, 국회는 3개월 안에 수용 여부 결정

■ 발효 후 3개월 안에 ‘한반도 역외가공위원회’ 설치해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원산지 인정 문제 협의

■ 학교 급식용 식자재를 FTA 적용 대상에서 제외

■ 민주당이 요구한 농어업·중소상공인 피해보전 대책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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