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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계량기는 거꾸로 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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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부안군 화정마을 주민 이현림씨 집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 [오종찬 프리랜서]

“우리 마을은 무공해 햇빛으로 전기를 생산해, 계량기도 거꾸로 돌아간다니까. 신문·방송에서 정전대란이니 전력난이니 하면서 호들갑들 떠는 걸 보면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

 누런 황금 들녘에서 벼 수확을 막 끝낸 전북 부안군 주산면 화정마을. 이장 유대규(60)씨는 31일 “지난해는 봄·가을에도 한 달 평균 5만여원씩 전기요금을 냈는데, 올해는 TV·컴퓨터·세탁기를 맘대로 썼지만 요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며 “에어컨·선풍기를 튼 여름철에도 전기료는 1만~2만원에 그쳤다”고 말했다. 유씨는 ‘사용량 0, 요금 1380원’이 찍힌 10월 분 전기요금 영수증을 들어 보이며 “저것이 바로 효자”라며 지붕 위를 가리켰다. 옥상에서는 검은색 태양전지판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화정마을은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농촌이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태양광발전기를 달아 천연 에너지인 햇빛으로 전기를 생산해 요금 걱정 없이 사용한다.

 이 마을 35가구 60여 명의 주민은 지난해 10~11월 지붕이나 마당에 가로 5m, 세로 4.5m 규모의 태양전지판(모듈)을 설치했다. 이후 마을에서는 햇볕이 나는 날, 전기를 생산하는 낮이면 계량기가 거꾸로 돈다. 계량기 눈금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전력소비량을 표시하는 숫자가 줄어든다. 이와 반대로 TV·전등을 켜 전력을 소비하는 밤이면 계량기는 오른쪽으로 돌면서 숫자가 올라간다. 태양광발전기는 가구당 월평균 350~450㎾의 전기를 생산한다. 전기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을 경우, 초과량은 다음 달 요금을 계산할 때 반영된다. 초과량만큼 전기요금을 덜 내는 셈이다.

동네 일부 지역이 아닌 마을 전체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달아 ‘전기요금 제로’를 달성한 곳은 화정마을이 처음이다. 일부 주민은 보일러 온수용 태양열집열판도 설치했다.

 마을회관의 경우 태양광발전기는 물론, 태양열집열판과 땅속 지하수의 열을 활용하는 지열설비까지 갖췄다. 20여 명의 주민이 매일같이 나와 TV·전자레인지 등을 사용하고 전기매트까지 쓰지만 요금은 거의 없다. 난방비는 기름 보일러를 돌리던 지난해 한 달에 30만~40만원씩 나왔지만 지금은 3분의 1로 줄었다.

 화정마을의 변신은 김인택(50)씨 등 젊은 농민들이 주도했다. 김씨는 10여 년 전부터 폐식용유를 모아 농기계에 사용하고, 유채기름을 짜 경운기·트랙터 등에 재활용하는 등 친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농사도 농약 대신 우렁이를 활용한 자연농법으로 짓는다.

 김씨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녹색마을을 만들기로 주민들과 뜻을 모은 뒤 지식경제부·에너지관리공단 등을 수십 차례 쫓아 다니며 ‘그린빌리지’ 사업을 따냈다”고 밝혔다. 전체 비용은 6억원, 이 중 4억원은 정부가 지원하고 지자체에서도 1억5000만원을 댔다. 주민들은 가구별로 50만~100만원을 부담했다. 김씨는 “초기에 일부 주민은 전기요금이 무조건 안 나오는 걸로 착각하고 전기 매트·히터 등을 마구잡이로 사용해 20만~30만원의 고지서를 받아들고 혼비백산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고 밝혔다.

 김호수 부안군수는 “10여 년 전 방폐장 유치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에너지 자립에 대한 군민들의 공감대가 높다”며 “그린 에너지마을이 더 많이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린빌리지=정부가 그린홈 100만 호 주택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이 마을 단위로 사업을 벌인다. 농가에서 3㎾급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전기요금이 70~80% 정도 절감된다. 올해에는 설치비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했다.

부안=장대석 기자
사진=오종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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