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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수유로 악비 죽인 진회 … 중국 최고의 간신으로 남아 … 우리도 끝까지 책임 물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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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아드 호미넴(ad hominem)’이란 말이 있다. ‘지성 또는 이성이 아니라 편견 또는 감정에 호소하여’라는 뜻의 라틴어인데 흔히 인신공격을 수식하는 말로 쓰인다. 논쟁에 있어 문제를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대신 상대를 욕되게 하는 데 치중하는 행태 말이다. 따라서 그 초점은 사실관계가 아닌 악의와 과장에 맞춰지게 된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함으로써 허약한 위치에 있는 논쟁자를 옹호하는 데 퍽 효과적이다.

 아드 호미넴이 동양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된 유명한 사례가 있다. 중국 남송 때 악비(岳飛) 대 진회(秦檜) 케이스다. 악비는 제갈량과 더불어 충절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중국인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관우와 함께 군신(軍神)으로 숭배되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는 금나라 군대를 맞아 연전연승을 거뒀고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 인기가 드높았다.

 하지만 강남으로 달아나 항주를 임시 도읍으로 삼고 있던 송의 귀족들은 악비가 눈엣가시 같았다.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서호의 풍광이나 즐기며 취생몽사하는 게 그들의 바람이었던 까닭이다. 진회는 가짜 성지를 만들어 악비의 병권을 빼앗고 소환해 죽였다. 결국 송은 굴욕적 화친조약을 맺고 금의 속국이 됐다. 나중에 무장 한세충이 진회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물었다. “도대체 악비에게 무슨 죄가 있었던 것이오?” 이때 진회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럴 만한 일이 아마도 있었을 것이오(其事體莫須有).”

 사람 사는 게 동서고금의 차이가 없다. 못된 것 먼저 배운다고, 우리도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것이 이런 ‘막수유(莫須有)’식 흑색선전이요, 네거티브 인신공격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판에도 예외 없이 아드 호미넴의 잔해들이 수북이 쌓였다.

 하지만 이번에 좀 달랐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 달라질 때도 됐다. 그 쓰레기들을 차근차근 분리 수거해 잘못 버린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흐지부지 끝낼 일이 아니다. 양측이 고소·고발한 사건들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아마 있었을 일’이 아니라 ‘없는 일’이라면 그 책임을 단단히 물어야 한다.

 악비는 나중에 복권돼 악왕(顎王)으로 추존됐다. 하지만 진회는 막수유로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간신으로 등극한다. 오늘날 악비의 묘에 가면 진회가 결박된 죄인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동상이 있다. 지금은 막아놨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회의 동상에 침을 뱉고 발로 차는 것이 관광코스였다고 한다.

 오늘날 막수유를 흩뿌린 사람들을 발로 차고 침 뱉을 순 없겠지만, 선거에는 승리만이 정의라는 명제가 더 이상 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줘야 한다. 승자건 패자건 마찬가지다.

이훈범 j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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