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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구조의 시간차 공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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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20면

베이비부머의 대량 출산과 고령화, 이후 세대의 저출산 문제가 결합돼 있는 것이 현재 인구 구조의 특징이다. 바둑도 그 수순이 중요하듯 이들 인구 구조 현상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하다. 베이비부머가 만들어 가는 한 편의 드라마는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밟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째 단계는 전쟁이나 혼란기 이후 출생아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조기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출생아는 바로 인구 증가로 연결되고 베이비부머가 형성된다. 우리나라는 베이비부머가 1, 2차에 걸쳐 형성되면서 거의 1600만 명에 이른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이들은 히피와 같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사회를 동적으로 만든다. 경제적으로는 초기에 인적 자본 투자가 늘어나면서 양육비용·교육비용이 증가해 국가와 민간 모두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이들이 성장해 사회에 진출하면서 노동력을 공급하고 주택을 수요하며 소비를 증가시킨다. 이에 따라 집값도 오르고 모든 것이 팽창하게 된다. 20세기 중반 이후의 경제 발전은 이러한 베이비부머의 경제활동 참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둘째 단계는 이들이 40~50대에 접어들면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소득이 늘어나며 자산 축적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시기다. 반면 이들의 자식세대는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인적 자본 투자가 급감하고 양육비용도 감소한다.

인구의 30%에 육박하는 베이비부머의 노동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기, 가처분소득이 가장 높은 시기, 그리하여 소비도 증가하는 시기에 저출산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양육비용은 감소한다. 즉 과거 인적 자본 투자의 과실은 향유하는 반면 미래를 위한 인적 자본 투자는 급감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인구 구조의 단계상 경제에 가장 좋은 영향을 준다. 인구 배당금이 극대화되는 시기다.

셋째 단계는 내리막길이다. 베이비부머가 노동시장에서 대거 은퇴하고 연금과 건강보험 등으로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시기다. 반면 젊은 세대의 저출산, 즉 인적 자본에 대한 과소투자로 인해 노동력이 감소하고 경제는 저성장을 보인다.

세금은 적게 걷히고, 재정은 쓸 곳이 많아지고, 소비는 극히 둔화된다. 노동력 감소, 재정 부담 증가와 높은 세 부담은 경제 활력을 더욱 떨어뜨린다. 베이비부머의 대량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후세대의 저출산 조합이 빚어내는 최악의 국면이다.

넷째 단계는 베이비부머가 이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고 세상은 보다 감소한 인구로 균형을 이루는 시기다. 인구는 줄어들었지만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의 극단적인 불균형은 사라진다. 적정한 출산과 균형된 연령별 인구 구성을 가지고 있는 시기다. 베이비부머가 연출한 심각한 불균형이 비로소 해소되는 국면이다.

일본은 셋째 단계의 중간 이전쯤, 유럽은 셋째 단계의 초반을 조금 지난 정도에 해당한다. 우리는 지금 둘째 단계 막바지쯤에 있다. 고령화·저출산이 심각한 이슈이지만 아직 경제에는 좋은 영향을 주는 때다. 40~50대인 베이비부머의 생산성은 한창인 상황에서 인적 자본에 대한 과소투자로 인해 소비 여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이비부머의 부모세대가 과거에 허리띠를 졸라매 가면서 해 놓았던 인적 자본 투자의 과실을 향유하는 반면 젊은 세대들의 인적 자본에 대한 과소투자로 인해 인구 배당금이 극대화되는 시기에 있다.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과거 투자 효과로 경쟁력이 강해지고 영업이익은 극대화되고 있는데 신규 투자는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업은 현재의 이익은 극대화돼 많은 배당을 주겠지만 미래가 암울한 기업이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잘 극복하고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도 중국 등 신흥시장의 성장이라는 외부적 환경과 함께 이러한 인구 구조의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40~50대 인구는 거의 700만 명이 증가한 반면 그 시기에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구 배당금의 증가로 인해 우리의 생활에 많은 버블이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 버블을 근본적 변화로 보는 데서 오는 위험도 내재돼 있다. 이제 우리는 곧 셋째 단계에 접어든다. 5~10년 정도 지나면 이를 피부로 느낄 것이다. 최악의 국면은 일시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거의 30년 정도 지속되는 지루하고도 긴 국면이다. 지속되는 시간도 몸서리칠 만큼 길고 양상도 완전히 다른 국면이기 때문에 우리는 장기적이고도 근본적인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우선 둘째 단계에서 형성됐던 많은 버블에 대해 고육지책의 마음으로 하나씩 해소해 가야 한다. 인구 배당금 잔치는 끝나가고 인구의 시간차 공격이 시작된다.



김경록(49) 2000~2009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채권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채권·금융공학부문 대표를 거쳤다. 올해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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