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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평대 2억원’ 전세 수요 여전 … “12월 겨울방학이 고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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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22면

27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현대아파트 앞 상가. 이곳의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마포구와 용산구의 경계에 걸친 5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거래한다. 서울시내와 가깝고 20~30평대 아파트가 많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전세 수요가 많다. 중개업소들의 현관 유리창에는 ‘107㎡(33평형) 전세 2억5000만원, 수리 완료’ ‘79.4㎡(24평형)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20만원’ ‘79.4㎡ 급매 3억7000만원’과 같은 전단이 가득했다.

주춤해진 수도권 전·월세난 현장 점검

도화동 한길공인의 김보영 대표는 “아파트 30평대 전세는 상반기보다 가격이 2000만원가량 떨어졌고, 20평대는 보합세다. 전세가 안 나가다 보니 급매물로 집을 내놓는 집주인도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 현대홈타운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최모(57·여)씨는 “원래 월세만 도배·장판을 해 주는 게 관례인데, 이제 전세도 도배·장판까지 해 주겠다는 집주인이 주변에 여럿 있다”고 전했다.
 
이달 들어 전세 거래 거의 끊겨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9월 가을 이사철을 지나면서 전세 수요가 줄어든 데다 전세 수요자들이 여전히 값이 비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 지은 지 13년 된 현대홈타운 아파트 79.4㎡의 전세가격은 2년 전 1억50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2억2000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2년 새 7000만원(47%)이 상승한 것이다.

특히 전세 수요는 ‘20평대 2억원 이하’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20평대 아파트의 몸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전세를 구하는 젊은 부부들은 30평대는 너무 넓고 20평대를 2억원 이상씩 주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도화동 서울공인의 이갑영 대표는 “세입자 중 상당수는 전셋값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 오른 만큼의 전세금을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로 재계약했다. 값이 더 싼 빌라를 찾는 수요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평대는 내년 이사철이 되면 다시 수요가 몰리고 가격도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학군 수요 때문에 서울에서 집값과 전셋값이 가장 비싼 강남구 대치동은 거래가 끊긴 양상이었다. 이곳은 지난해부터 전세난 속에 값이 지속적으로 올랐고, 올여름에는 몇몇 아파트의 재건축 및 리모델링에 따른 일시적 이주 수요가 가격 상승폭을 더 가파르게 만들었다. 지난해 말 5억원 안팎이었던 선경아파트 101㎡(31평형)의 전셋값은 현재 7억원으로 10개월간 2억원가량 오른 상태다. 이곳의 중개업소들은 대부분 “잠깐 주춤할 뿐 가격이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청실아파트 앞 우방공인 관계자는 “수능이 끝나고 12월 초 고등학교 배정이 되면 학군·학원 수요가 급증한다. 겨울방학과 함께 해외 유학생들이 복귀하는 것도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과 인접한 베드타운인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하안동은 입주 2년 된 새 아파트가 즐비한 곳이다. 특히 20~30평대가 많다. 새 아파트의 82㎡(25평) 전셋값은 2년 전 1억8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올여름에는 2억8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매매가격이 4억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전세가격이 70% 수준에 육박했던 것이다. 철산동의 래미안공인 관계자는 “2년 전 들어온 세입자들은 1억원을 올려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여력이 안 돼 인근에 오래됐지만 좀 더 싼 아파트로 이사간 이가 많다”고 말했다. 이곳 새 아파트들의 전셋값은 최근 20평대가 3000만원(10%) 정도 하락했다.
 
“전·월세 대책 효과” vs 일시적 현상
정부는 계절적 요인과 함께 전·월세 안정대책의 효과로 전셋값 상승세가 둔화됐다고 보고 있다. 실제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 주간상승률은 9월 첫째 주 0.62%에서 10월 셋째 주 0.17%로 낮아졌다. 국토해양부는 올해 초 도시형 생활주택, 다세대·다가구주택, 오피스텔 등 소형주택을 건설사업자에게 2%의 저리로 자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내놨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지난 8월 수도권 임대사업자 세제지원책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준공 후 미분양아파트를 사서 임대사업을 하는 이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올해 8월까지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수도권의 다세대·다가구 등의 주택 인허가는 5만8000건으로 지난해 전체(4만6000건)보다 26% 늘었다. 수도권의 오피스텔도 70% 이상 공급 면적이 증가했다. 이원재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다세대·다가구가 어느 정도 아파트 전세 수요를 흡수해 줬다. 과거 2001~2002년 전세가격 상승기에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다세대로 많이 가면서 전셋값이 안정됐다. 올겨울에는 지난해보다는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의 전셋값 둔화는 일시적 숨고르기일 뿐 겨울철이 되면 또다시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삼성증권 김재언 부동산전문위원의 말이다. “전셋값이 안 오르려면 매매로 전환되는 수요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매매가가 전셋값보다 너무 비싸 수요가 적다. 서울에서 전세 사는 샐러리맨이 집을 사려면 대출을 2억~3억원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매매가가 내려가지도 않는다. 12월 이후 방학철이 되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설 수 있다.” 실제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7일까지 서울의 전셋값은 평균 13% 오른 반면 매매가는 0.2% 하락하는 데 그쳤다.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도 “당분간 전세시장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내년 1월이 되면 오를 수 있다. 다만 전셋값 상승폭은 지난해보다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팀장은 “정부의 다세대·다가구·도시형 생활주택 공급 확대는 일단 월세 수요자의 숨통을 터 줄 수는 있지만 아파트 전세 수요자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전·월세난을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인 해법은 무엇이 있을까.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다주택자의 임대주택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인프라를 구축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에는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 역할을 한다. 우리도 새로 뭘 짓기보다는 기존에 남는 주택이 전세시장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임대사업자가 전셋값을 낮추는 대신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환 교수는 “정부가 전세자금을 싼 이자로 대출해 주는 식으로 인위적으로 수요자에게 돈을 대주기 때문에 자꾸 전셋값이 오른다. 1억원씩 대출할 수 있는 계층은 정부 차원에서 전세난을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저소득층 주거 해결에 집중하고, 중산층 아파트 전세시장은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김재언 위원은 “주택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보금자리주택이나 장기전세주택 등 공공주택을 계속해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홍콩과 같이 그린벨트 지대를 공공임대주택 부지로 활용하는 방안도 하나의 방법론으로 거론된다.
 
박 시장 8만 호 임대주택, 질적 담보돼야 성공
공공임대주택 활성화는 박원순 시장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저소득층 주거 문제 안정을 위해 현재 16만 호인 서울시 공공임대주택을 8만 호 더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기존 주택을 매입하거나 건물이 없는 나대지를 임차해 다세대·다가구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가옥주에 대해 세제 혜택과 집수리 지원 등을 해 주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박 시장 측 핵심 관계자는 “전세보다는 치솟는 서민층 월세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서민층 임대 정책에 초점을 맞춘 방향은 옳지만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경환 교수는 “미국은 60년대 이미 공공임대주택을 안 짓기로 했다. 슬럼화되고 관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임대주택이 일부 완충작용은 할 수 있지만 많이 짓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박원갑 팀장은 “지금도 다세대주택 등의 월세시장은 내년 말께가 되면 공급과잉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재언 위원은 “질적인 담보가 돼야 임대주택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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