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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가 비평준화보다 학업성취·자아존중·학생만족도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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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불평등은 개인적 상실감·박탈감을 넘어,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되며, 소모적인 사회갈등비용을 초래한다. 토론자들이 고교입시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연세대 강상진 교수, 충남도의회 김지철 교육의원, 천안고교평준화시민연대 이윤상 집행위원장, 평등교육실현 천안학부모회 김난주 대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곰돌, 천안중학교 배영현 교사.

평준화 제도가 학력 하향화…“근거 없는 주장”

고교평준화 지역이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학업성취도, 자아존중감, 학생만족도가 높은 반면 문제행동, 사교육비, 진학열, 입시스트레스는 덜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객관적 연구에 의한 결과여서 향후 충남교육청의 천안 지역 고교평준화 추진 여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천안시는 올해 처음 진행한 ‘민·관합동 워크숍’ 마지막 일정으로 22일 ‘고교간 교육격차와 고교입시전형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토론자로 나선 연세대학교 강상진 교수(교육학)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평준화 정책이 비평준화 정책보다 교육적으로 적합하다”고 밝혔다.

 강 교수 등이 2005년 발표한 『평준화 정책 효과의 실증분석 연구자료』에 따르면(연구 목적인 고교평준화 정책의 적합성을 검증하기 위해 전국 일반계 고교 121개 고교, 195개 중학교 선정해 교장·교사·학부모·학생을 조사한 자료) 각종 영역에서 놀랄 만한 결과를 얻었다. 그동안 제기된 평준화 제도가 학력 하향화를 초래한다는 주장과는 상반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강 교수가 분석한 거의 대부분 지역이 비평준화 보다 평준화에서 학업성취도가 두드러지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어, 외국어, 수리영역에서 평준화 지역 학교가 3가지 모든 영역에서 더 높은 학교 효과를 보였다. 전국을 기준으로 비교한 경우나 중소도시 지역만 비교한 경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중소도시 지역에서 수학영역은 제외)

 강 교수는 “이 결과가 표본자료에서만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모든 학교로 일반화 할 수 있고, 더욱 중요한 건 이런 차이가 학생의 가정환경이나 경제배경, 과외 여부, 도시의 재정자립도 등 학생, 가정, 학교의 사회·경제적 여건에서 발생하는 영향을 제거한 후 나타난 차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며 “따라서 2004년 발표된 평준화가 학력 하향화를 초래한다는 내용의 연구는 근거 없음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비평준화, 사교육비·열등감·입시스트레스 부담”

아울러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은 타인을 기준으로 자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높았다. 자신을 열등하게 표현하는 부정적 자아감은 전국 및 중소도시 표본자료에서도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강 교수는 “학생의 정의적 특성 행동발달이 중요한 목적임을 고려할 때 비평준화 제도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왜곡된 방향으로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학업 및 대인관계 만족도 역시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평준화에 비해 떨어졌다. 규범적·법률적 문제행동도 심했다. 문화적 여가활동 수준도 낮았다. 문화적 여가활동은 학생들이 학업 외에 박물관·미술관·콘서트·음악회·연극·뮤지컬 등을 감상하는 정도다. 단 문화적 여가활동 수준의 경우 도시 규모 차이를 통제했지만 읍·면 지역의 열악한 문화적 환경 영향이 반영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밖에 비평준화는 평준화에 비해 월 사교육비가 더 높았다. 학생 성별, 학업성취도 수준, 부모 소득, 학교가 있는 도시의 경제적 수준 영향을 통제한 후 중소도시 표본자료를 분석, 두 지역의 사교육비를 비교한 결과다. 이는 높은 진학열과도 연관된다. 비평준화에 소재한 학부모들이 평준화 보다 학업지원에 적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의 교육수준, 교육적 자산, 학생의 학업성취수준이 동등하다는 조건에서 볼 때 비평준화 지역 부모들이 자녀의 진학지원에 더 적극적이며 일상생활을 더 많이 희생한다고 할 수 있다. 입시스트레스도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심했다. 강 교수는 평준화 지역 학생보다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입시와 관련한 스트레스 요인들에 더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강상진 교수의 연구자료는 교육성과, 교육과정, 학생생활, 사회문제 영역에서 11개 기준을 설정하고 19개 준거변수에 대한 평준화 정책 효과를 제시한 것으로 당시 언론에서는 학업성취도 영역 결과만 보도된 바 있다.

2011학년도 고교별 원서접수현황 모니터.

“평준화 전환, 공정한 경쟁, 교육격차 연구 필요”

강 교수는 평준화 및 비평준화 정책에 대해 ▶근거리 학교배정이 가능한 도시지역은 평준화 정책으로 전환하고 ▶평준화 지역 학교들은 학교간 교육경쟁이 공정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학교간 교육경쟁을 자극하는 기제가 필요하며 ▶도 교육청 수준에서 고교간 교육격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 교수는 “고교간 교육격차를 완화해 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지향하고 교육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고교간 교육격차를 관찰하고 진단하는 작업과 함께 법적으로 교육격차의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정권이 바뀌어도 소외계층과 학력부진학생들을 위한 교육지원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면서 “이 같은 제도적 정비가 순조롭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고교간 교육격차와 고교서열화가 중등교육 정상화 저해, 대학입학전형 혼란, 사회계층화 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감이 적극적 의지 갖고 고교평준화 추진해야”

토론회 참석자들은 김종성 교육감이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고교평준화 추진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행사를 주관한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천안학부모회 김난주 대표는 “선진국은 대학평준화까지 실현하고 있는 시대다. 한국 40년 평준화 역사에서 천안이 1980~1990년대에 실현했던 고교평준화 정책을 아직도 갑론을박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논란”이라며 “성적지상주의와 서열화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제도, 지역 학교들이 골고루 명문교라 불릴 수 있는 제도,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는 물음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제도, 즉 고교평준화야말로 천안 지역 학생과 학부모에게 희망을 되찾아 줄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지철 교육의원(천안)은 “교육불평등과 사회양극화를 우려한 미국 행정부가 1966년 당시 대학에 의뢰해 4000여 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62만5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주요 내용은 교육과정 보다 부모들의 가정환경이 학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게 핵심이었다”며 “천안도 경부선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학력격차가 생기는 불평등 현상과 맞닿아 있다. 고교평준화와 비평준화 중 어느 제도가 천안 지역 학생, 학부모, 교원, 지역사회가 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지 잘 판단해야 할 것”이고 말했다.

글·사진=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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