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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LIFE7] “불임이 아니라 난임(難妊)…상처 주는 세 가지 말 조심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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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결혼 4년 차 주부 A씨(43). 과배란 인공 수정 시술을 받으며 간절히 엄마 되기를 바라는 ‘난임(難妊)’ 여성이다. 최근 친한 후배로부터 “결혼하자마자 임신이 되는 바람에 신혼을 못 즐겨 속상하다”는 ‘하소연’을 듣고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가뜩이나 지인의 임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엄청난 질투와 화, 우울감 등이 복받쳐와 힘이 들던 터였다. 겨우 평정심을 찾아 축하인사를 전했는데, A씨의 괴로움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후배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보내왔다.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A씨가 후배에게 문자를 보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더 이상 아기 사진을 전송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관계가 서먹해질 위험을 감수할 만큼 A씨의 마음고생이 컸던 것이다.

난임 가정을 위한 단체, 사단법인 ‘아가야’는 25일 ‘난임 가정에게 상처를 주는 말 3제(題)’를 발표하고, 이를 조심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회원 A씨 같은 사례가 많아서다. ‘아가야’ 박춘선 대표는 “주변 사람들이 악의 없는 조언이라며 생각 없이 뱉어내는 언어 폭력이 아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난임 부부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된다”며 배려를 당부했다.

난임 부부에게 상처가 되는 첫 번째 말은 “손만 잡고 자도 생기는데…”다. 듣는 사람에게 비교당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손만 잡고 자도 아이가 쉽게 생기는데 너는 왜 못하니?’라는 속뜻이 전해져 와 은근히 자랑하는 듯 들릴 수 있다.

“조급하면 안 생겨”도 ‘상처 주는 말’로 꼽혔다. 이는 난임 부부라면 수십 번씩 들었을 만큼 흔한 조언으로 통하는 말이지만,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지 않은 난임 부부는 없다고 한다. 마치 ‘네 예민한 성격 때문에 아기가 안 생기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듯 들려서다. ‘아가야’ 박 대표는 “난임은 단순히 스트레스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섣부른 조언을 하지 마라”고 강조했다.

또 “입양이나 해. 포기하면 임신된다더라”도 난임 부부를 힘들게 하는 말이다. 단순하지 않은 입양 문제를 장난처럼 툭 던져놓는 것 자체가 듣는 사람에겐 상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네가 아이를 갖지 않는 게 하늘의 뜻일지도 몰라” “나도 임신이 안 될 때 어떤 기분인지 알아. 둘째 가질 때 두 달이나 걸렸거든” “40, 50대 여자들도 애를 잘만 낳더라” 등도 해선 안 될 말로 꼽혔다.

‘아가야’는 이런 주변 사람들의 배려 없는 언행에 대한 난임 부부들의 대응 요령도 제시했다. 화를 억누르지 말고 그때 그때 “그 말이 내겐 상처가 된다”며 불쾌감을 표현하라는 것이다. 상당수 난임 부부들이 난임 문제를 숨기며 애써 태연한 체하는 것도 분노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자신의 상황을 용기 있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란 조언이다. 또 ▶부부가 서로 첫 번째 지지자가 돼 서로 응원하고 상처를 다독여 줄 것 ▶명상·산책·요가 등 정서적 안정을 위한 방법을 찾을 것 ▶난임 가정 모임 등에 참가해 전문 상담을 받아볼 것 등을 권했다.

글=이지영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난임=‘임신하기 어려운 일.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하는 말. 2003년 사단법인 ‘아가야’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로, 2010년 2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됐다. ‘임신하지 못하는 일’을 뜻하는 단어 ‘불임(不妊)’ 대신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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