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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 2000] 잉글랜드·포르투갈 관전평

중앙일보

입력

경기 시작과 동시에 잉글랜드는 다이나믹한 공격을 선보이며 아주 쉽게 두 골을 성공시켰다.

첫골은 오른쪽 터치라인 부근에서의 베컴의 정확한 센터링과 이은 스콜스의 런닝 헤딩슛으로 비교적 쉽게 성공되었다.

그리고 18분 또다시 오웬으로부터 시작된 볼이 베컴의 발에 닿으면서 다시 한번 자로 잰 듯한 어시스트, 문전 쇄도하던 맥나마만의 침착한 슈팅. 그래서 경기는 순식간에 2대0으로 벌어졌다.

두 골을 먼저 잃은 포르투갈이 혹 전의를 상실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순간, 3분뒤 피구의 아크 중앙에서의 멋진 30m 중거리슈팅이 그대로 네트에 꽂히면서 숨막히는 접전의 신호탄이 되버렸다.

전반 종료 7분 여를 남겨두고 루이 코스타의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의 절묘한 센터링을 후앙 핀토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먼 쪽 포스트를 튕기며 골네트를 갈라 승부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양국 응원단의 명암이 엇갈리게 되었다.

이쯤에서 전반에 나타난 양팀 진영을 살펴보자면 포르투갈은 초반 3-6-1에 가까운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루이 코스타가 거의 프리맨에 가까운 역할을 담당하며 그라운드 곳곳을 구석구석 휘저으며 게임을 이끌어 갔는데 역시 포르투갈은 두 슈퍼 스타인 피구와 루이 코스타에 대한 높은 의존을 보이면서 플레이를 전개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피구는 소속팀에서와 같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섰지만 중앙 안쪽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많았다. 군데군데 선수간에 호흡이 맞지 않는 부분들도 눈에 띄긴했지만 나름대로 미드필드에서의 매끄러운 연결이 돋보인 전반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마무리 패스 연결이 다소 부정확했고 이는 아마도 신예 누노 고메스의 위치선정의 문제에 기인했던 바라고 생각된다.

반면 잉글랜드는 초반 이른 시점에서의 득점이후 역습을 노리는 식의 플레이패턴으로 경기에 임했다. 전반 초반 오웬과 쉬어러가 좌우 사이드 쪽으로 벌려주는 식의 플레이로 포르투갈 수비를 분산시킨 뒤 패싱이 좋은 베컴 등을 이용, 2선에서 침투하는 미드필더들에게 슈팅기회를 제공하게 하는 식의 플레이로 쉽게 득점에 올리며 재미를 보았다.

그렇지만 전반 중반 이후 그런 다이나믹한 움직임이 사라지면서 단조로운 공격 패턴으로 일관했다. 한편 수비진은 자기 진영 미드필드 중반에서의 마크를 따로 하지 않고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까지 수비 선을 내려 수비하는 모습을 보이며 포르투갈의 플레이 전개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고 만다.

포르투갈 선수들의 중거리 슈팅이 아쉬운 대목이기도 했다.

아무튼 전반 잉글랜드는 자국 리그에서 곧잘 보여주던 전형적인 공수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개인기와 조직력에서 앞선 포르투갈에 쫓기는 양상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말았다.

후반에 가장 큰 변화라 하자면 잉글랜드가 오웬을 빼고 헤스키를 투입시키면서 헤딩력이 좋은 쉬어러와 함께 포스트 플레이를 노린 전술을 사용한 거라 할 수 있다.

이에 포르투갈은 마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바르셀로나전 발렌시아의 플레이를 연상케하면서 위축됨 없는 수비 위주의 역습을 기반으로 한 전술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다소 흠이라면 포르투갈 중앙 수비진의 움직임이 다소 경직됨을 보이면서 여러 차례좌우 측면에서 올라오는 센터링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포르투갈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부분이었다면 잉글랜드가 후반 내내 이러한 단조로운 공격 양상을 고집했다는 거라 할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이 경기 패배로 키건 감독의 전술 운용상의 실수로 귀결되었던 부분이기도하다.

후반 13분 드디어 승부를 결정짓는 골이 터진다.

아크 정면을 파고들던 루이 코스타가 수비 두명 사이로 절묘한 스루패스를 넣어주고 이에 뛰어들던 누노 고메즈가 잉글랜드 골키퍼 시먼과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한 슈팅을 성공시켜 포르투갈을 환호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게 된다.

2대0으로 뒤진 포르투갈이 이후 3골을 몰아넣으며 3대2의 기적적인 승리를 낳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경기는 네덜란드 대 체코 전에 이은 이번 대회 또하나의 명승부라 할 수 있는 경기로 끝이 났다.

후반 잉글랜드 공격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전술운용상의 단조로움을 들 수 있겠다. 포르투갈 수비진이 깊숙이 포진하며 역습을 노리는 양상으로 나온 데도 이유가 있겠지만 빠른 스피드에 의한 좌우 돌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그들이 노렸던 포스트 플레이를 더욱 어렵게 하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수비에서는 아담스 등 몇몇 선수의 노쇠화가 역력했을 뿐더러 공수를 통틀어 개인 능력에서도 포르투갈에 나은 면을 보이지 못하면서 잉글랜드 축구의 한계를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포르투갈은 후반들어 역습 위주의 경기 운영으로 일관했지만 돋보이는 볼 컨트롤과 지능적인 플레이로 경기의 페이스를 능란하게 조절한 피고와, 부지런한 움직임과 날카로운 패스 등으로 효과적인 공격을 주도한 루이 코스타가 전 후반 내내 잉글랜드 진영의 느슨한 수비와 그로 인해 벌어진 공간을 자유자재로 파고들며 결국 기적적인 역전을 이끌어내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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