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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분석] 北,이럴 때도 있었나? 40년동안 진화보다 퇴보한 북한 … 1972년과 현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7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북한보다 못살았다. 오죽하면 신성일씨가 중앙일보에 연재중인 `청춘은 맨발이다`에서 "68년 도쿄에서 영화를 찍을 때 북한 공작원이 `우리보다 못 사는 것들이 어디, 비싼 데 와서 촬영해`라고 협박했다(9월15일자)"고 공개했을까.

실제로 한국이 북한과 어느 정도 경제적 균형을 맞춘 것은 72년이었다. 당시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106억 달러를 기록했다. 53년만해도 한국의 GDP는 13억 달러에 불과했다. 100억 달러 달성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그래서인지 당시 북한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해 7·4 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고, 한국을 둘러본 북한 당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에 적잖이 긴장했다. 북한은 이후 국제적인 긴장완화의 바람을 타고 서방과의 무역확대에 총력을 기울인다. 경제적 우위를 계속 이어가려면 국제적인 무역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4년만에 북한의 계획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76년 대서방채무불이행 사태에 빠졌다. 당시 유일한 채무불이행 공산권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후 남북간의 경제격차는 갈수록 크게 벌어졌다. 2007년 북한의 GDP는 148억 달러로 7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리뷰).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북한의 GDP는 한국의 38분의 1 수준이다.

온라인 중앙일보는 72년 북한의 경제상황이 담긴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했다. 중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72년 북한의 사진을 `1972년 황금기의 북한`이라는 제목으로 올리기도 했다. 이 사진들은 당시에는 국내 정치상황과 남북 대치 상황 때문에 공개되지 않았다.

#보육시설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1972년 6월에 찍은 직장인을 위한 보육시설이다. 자연채광을 이용한 넓은 실내 놀이터를 갖추고 있으며, 아이들도 비교적 자유롭게 뛰어논다.
하지만 현재 유아원은 선전용인데도 시설은 물론 아이들의 옷차림도 열악하다. 보육교사의 지시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어릴 때부터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평양과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시설이 더 형편없다(작은 사진).

#신발공장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1972년 6월 평양에 있던 자동화공정을 갖춘 신발제조 공장.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생산된 신발이 지나가고 있다. 이를 여직원이 품질검사를 하는 등 상당한 수준의 제조기반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재의 신발공장에선 첨단 장비를 찾아볼 수 없다. 고무신이 가득하다. 신을 찍어내면 쌓아서 별도로 포장하는 등 낮은 수준의 기술력을 볼 수 있다.

#인쇄공장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1972년 7월에 찍은 것이다. 포장지가 인쇄되면서 동시에 상품을 자동으로 포장한다. 당시 이런 공정인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현재 인쇄공장 사진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돈을 끌어들여 설립된 공장이다. 인쇄된 것을 수작업으로 고르는 등 70년대보다 못한 수준이다. 외국에서 투자해 공장을 만들더라도 최첨단 장비는 북한에 반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한 눈에 봐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작은 사진은 당시 북한이 생산한 각종 의료장비들이다. 자체 의료장비를 생산하고, 자동화시설을 이용해 의약품을 만들 정도로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의 의료산업 수준은 한국보다 높았다.
현재 북한의 의료관련 산업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외국의 지원이 없으면 유행성 독감 조차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기초 의약품도 제대로 주민들에게 공급하지 못한다. 열악한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만들어진 약품은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포장한다.

#봉제공장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1972년 6월에 찍은 평양의 의류공장이다. 직원들의 알록달록한 유니폼부터 자동재봉틀을 갖추고 있다. 당시로는 첨단시설이다.
우측의 봉제공장은 2009년 재일동포들이 돈을 모아 북한에 전달, 건설한 애국모란봉제공장이다. 기계의 수준이 70년대와 달라진 것이 없다. 직원들의 옷차림은 72년에 비해 남루해졌다.

#보건소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함경남도 흥산군의 한 보건소. 왕진용 자전거와 가방을 멘 보건직원들의 옷차림이 눈길을 끈다. 보건소의 외형도 상당히 깨끗하고 아늑해 보인다.

우측 컬러 사진은 현재의 보건진료소. 선전을 위해 외벽에 도색을 하는 등 신경을 썼지만 허술해보인다. 내부에 배치된 의료장비와 위생상태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 현재 북한의 의료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나마 이 의료장비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비치한 선전용이다.

#상점

[사진=중앙포토, 중화왕, 치앙구어왕, CN뉴스, 조선중앙TV]

1972년 6월 평양의 한 상점. 편의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각종 식료품과 의약재 등이 즐비하다. 연출된 사진이라고 해도 풍부했던 당시의 북한 사정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현재는 이런 상점은 북한의 최고위층이나 관광객들만 드나든다. 주민들은 길바닥에 장마당을 펼쳐놓고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다. 그나마 평양에 있는 상점도 70년대 상품진열방식 그대로여서 시간이 멈춘 듯 하다.

유혜은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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