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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민속마을 이야기 ① 종곡리 느티나무 장승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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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곡리 느티나무 장승마을 주민들이 원두막에 모여 앉아 짚풀로 생활용품을 만들고 있다. [조영회 기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10월.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농촌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연인과 같이 농촌마을 고유의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중앙일보 천안·아산은 10회에 걸쳐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지역의 농촌전통테마마을을 소개한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마을에사는 한 꼬마아이가 짚풀로 만든 지게를 매고 기념촬영을 했다. [조영회 기자]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먼 옛날 호랑이가 매일 같이 마을에 내려와 주민들을 괴롭혔다. 주민들은 집 밖에 나가길 두려워했고 마을에 장승을 세워 장승제와 산신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때부터 호랑이는 종적을 감췄고, 마을은 느티나무 장승마을로 불렸다’.

 아산 송악면 ‘종곡리 느티나무 장승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장승제와 산신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종곡리 느티나무 장승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숲길이 마을의 정취를 맛보게 했다. 숲길 양쪽에 서 있는 돌장승과 나무장승이 반겼다.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마을 주변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광덕산 자락에서 흘러내려오는 맑은 물과 수려한 계곡의 경치도 한 눈에 들어왔다. 마을 인근에는 조선시대 때부터 서 있는 듯한 거대한 소나무들로 이뤄진 숲과 천년 고찰 봉곡사와 함께 현충사·온양민속박물관 같은 관광명소가 있다.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느티나무들이 마을 이름에 왜 느티나무가 들어갔는지를 알게 해준다.

 종곡리 느티나무 장승마을은 2007년 산림청으로부터 농촌전통 테마마을, 팜스테이, 산촌생태마을, 농촌체험 및 휴양마을로 지정 받았다. 어린이·청소년뿐만 아니라 연인과 가족단위 도시인이 농촌을 체험한 뒤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갈 수 있도록 꾸며졌다. 짚풀공예·농사체험·전통놀이를 통해 가족의 정을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즐길 거리들도 마련돼 있다. 장승마을 김정아 사무장은 “우리 마을은 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며 “각종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에 한 번 와 본 관광객들 중에는 상당수가 이곳을 못 잊어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전통문화와 체험 속으로

마을회관을 지나 5분 정도 걸으니 원두막 일곱 채가 나타났다. 원두막 뒤로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논들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논가에는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뤘다.

 한 원두막에는 마을 주민들이 둘러 앉아 짚풀로 각종 물건들을 만들고 있다. 그들 옆에는 다 만든 짚신과 지게·바구니·삼태기 같은 농가 생활용품이 놓여 있어 조상의 슬기와 숨결을 느끼게 했다.

 “어르신 쉬엄쉬엄 하세요. 너무 열심히 하면 피곤하시잖아요.” 현명기 종곡리 이장이 짚풀공예에 열중하고 있는 강필선(88)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괜찮아. 늘 하는 일인데 뭘. 이건 일도 아니여.” 강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며 ‘허허’ 웃었다.

 짚풀공예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현 이장에게 강 할아버지는 동네 이웃이자 스승인 셈이다. 현 이장은 “어려서부터 짚풀을 가지고 놀다 보니 자연스레 전문가가 됐다”며 “강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짚풀을 연구하고 공예품을 만든 진정한 장인”이라고 추켜세웠다.

 다른 한 쪽에서는 마을 아이들이 벼 수확 체험 놀이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벼를 홀태에 끼워 밀기도 하고 짚을 지게에 담아 나르기도 했다. 김지숙(7)양은 “이곳에서 살면서 한 번도 도시 아이들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며 “다른친구들이 하기 어려운 놀이들을 매일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유기농 표고버섯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농가 7곳이 재배하고 있다. 아이들은 매달 유기농 표고버섯을 따는 체험도 하고 있다.

아산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한 이후 모든 게 넉넉해졌어요. 몸도 자유롭고 마음도 여유로우니 도시에서 앓고 있던 병이 나았어요. 아내가 주말마다 이곳으로 와 요양도 하고 일도 도와주니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이게 행복인가 싶어요.”

 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이환봉(58)씨의 얘기다. 그에게 느티나무 장승마을은 특별한 곳이다. 이씨는 경기도 수원에서 운수업체를 운영하다 2007년 혼자 이곳으로 와 살고 있다. 당시 이씨는 폐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씨는 “언제부턴가 기침을 심하게 해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폐가 너무 나쁘니 지금 하는 일을 멈추고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가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 뒤 이씨는 고향인 충남 홍성에 내려와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주변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느티나무가 많고 경치가 뛰어난 이 마을을 알게 돼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이씨는 “처음엔 이곳에서 아름다운 집을 짓고 농부로서 소박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어느 날 젊은 연인 한 쌍이 찾아와 집이 아름답다며 하룻밤 묵어가기를 원해 방을 내줬다”며 “그것을 계기로 펜션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일주일 평균 300명 이상이 펜션을 이용한다고 했다.

 현 이장은 “현재 종곡리에는 펜션 4곳과 민박집 6곳이 있다”며 “앞으로 아산 지역의 대표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숙박시설을 늘리고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더욱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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