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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서 “비상계엄 철폐” … 31년 전 외침 아직 생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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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전주 신흥고 81회 졸업생들이 ‘5·27 민주화 운동’ 기념 조형물이 들어설 곳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군사정권의 위세가 서슬 퍼렇던 1980년 5월 27일. 전북 전주신흥고 학생 1500여 명이 학교 운동장에 집결했다. 이들은 노래 ‘아침이슬’ ‘오, 자유’ 등을 부르고 “비상계엄 철폐” “유신잔당 척결” 등을 외쳤다. 학교 상공엔 헬기 두 대가 맴돌고, 담장 밖엔 총을 든 군인·경찰 500여 명이 출동했다.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교사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면 너희들 다 죽는다. 차라리 우리를 밟고 가라”며 막아 섰다. 학생들은 운동장을 돌다 강당에서 토론회를 가진 뒤 자진 해산할 수 밖에 없었다.

 31년 전 전주신흥고에서 일어났던 5·27 민주화운동은 5·18 광주 민중항쟁 후 광주 외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고등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였다. 당시 시위에 앞장섰던 이우봉(50)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그 며칠 전 광주에서 발생한 시민 대학살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슴 속의 피가 끓었다”고 회상했다.

 전주신흥고의 민주화운동은 이후 역사에 묻히다시피 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와 함께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당시 3학년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전주신흥고 81회 동창생들이 23일 모교에서 졸업 30주년 ‘홈 컴잉 행사’를 가졌다. 이들은 오랜 만에 함께 운동장을 뛰고 달리면서 우정을 다지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학창시절을 회고했다.

 이들은 이번 행사에서 5·27 민주화운동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마음을 모았다. 총동창회와 함께 기념 조형물을 세우기로 결정, 그 터를 100년 가까이 된 학교 강당 앞으로 정했다. 또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매년 후배들에게 민주화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5월 모교 운동장에서 80년 5월 27일 상황을 재현했다. 학생·동문 등 700여명이 모여 31년 전 외쳤던 구호가 적힌 현수막 등을 들고 운동장을 돌았다. 또 당시 시위와 관련해 제적·정학을 당했던 친구들의 징계 무효를 선언했다. 80년 유인물을 뿌리다 붙잡혀 10개월 가까이 감옥생활 한 이우봉씨 등 20여명은 제적·정학 등을 당했었다. 교사 2명(문봉길·최용식)도 학교 밖으로 쫓겨 났었다.

 온성욱(50·변호사) 전주신흥고 81회 동창회장은 “이번 홈커밍 행사에서, 10대 때 우리 가슴에 불꽃처럼 타올랐던 정의에 대한 소명의식을 앞으로도 잊지 말고 살자고 서로 다짐했다” 고 말했다.

장대석·백일현 기자

◆전주신흥고=1900년 9월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가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했으며, 1908년 신흥학교라는 교명을 가졌다.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에 자리잡고 있는 인문계 고교로, 현재 110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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