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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선동열 없이 … 대구인 힘으로 우승 한번 해보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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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가을야구 20년 저주’를 푼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장면. 삼성은 LG에 3점 차로 뒤진 9회 말 이승엽의 3점 홈런, 마해영의 결승홈런으로 10-9의 대역전승을 거둬 우승을 차지했다. [중앙포토]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를 지켜보는 삼성은 느긋하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은 롯데와 SK가 혈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다.
2승씩을 주고받은 롯데와 SK의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은 2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순연됐다. 23일 5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25일 시작되는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에서 삼성과 대결한다.

류중일(48) 삼성 감독은 “롯데가 올라오든, SK가 올라오든 힘을 많이 소진할 것이다. 에이스 투수가 한국시리즈 1·2차전에 등판하기 어려우니 우리가 유리하다”며 웃었다.
삼성은 2006년 이후 5년 만에 정규시즌에서 우승했다. 류 감독은 지난 1월 삼성 사령탑에 부임했다. 계약기간을 4년이나 남긴 전임 선동열 감독(현 KIA 감독)의 다음 주자였다. 지난해 삼성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류 감독의 부담은 컸다. 취임식 후 “준우승 팀을 물려받았으니 꼭 우승을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류 감독은, 아니 삼성은 기대 이상으로 잘했다. 4·5월 초반엔 중상위권을 유지하다 초여름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7월 27일 1위에 오른 후 하루도 선두를 빼앗기지 않았다.

삼성엔 이대호·홍성흔(롯데) 같은 중심타선도, 윤석민(KIA)·류현진(한화) 같은 수퍼 에이스도 없다. 그러나 어느 팀보다 안정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차우찬·윤성환 등 젊은 투수들이 10승 이상을 올렸다. 국내 최고 마무리 오승환은 한 시즌 최다 타이인 47세이브를 기록했다. 여기에 정현욱·안지만·정인욱·권혁 등 뛰어난 중간 투수들이 기계적으로 돌아가면서 삼성의 막강한 불펜은 더 세졌다. 누구 하나가 빠진다 해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구조다. 삼성이 팀 평균자책점 1위(3.35)를 기록한 비결이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타선도 좋아졌다. 팀 타율 6위(0.259), 팀 홈런 4위(95개)로 중간 정도의 기록을 냈지만 확실한 4번 타자를 건졌다. 최형우가 홈런(30개), 타점(118개) 1위를 차지하며 타선의 축을 세웠다.

이승엽이 2004년 일본으로 떠난 뒤 삼성엔 해결사가 없었다. 양준혁의 은퇴로 더욱 약해진 타선에 최형우가 중심을 잡았다. 2002년 삼성에 입단했다가 기량 미달로 방출됐다가 이후 경찰 야구단을 다녀와 2008년 삼성에 재입단한 최형우. 그가 장효조·이만수·양준혁·이승엽 등 수퍼 엘리트의 몫이었던 삼성의 간판타자로 성장했다. 삼성 마운드가 조직력을 갖추게 된 건, 최형우 같은 선수가 차근차근 자라날 수 있었던 건 삼성으로서는 엄청난 변화다.

삼성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20년 동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 한을 풀기 위해 선수 장악력이 뛰어난 김응용 해태 감독을 영입했고,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2005년엔 ‘국보 투수’ 선동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공격력 위주의 팀을 투수력 위주로, 스타 중심의 팀을 조직력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선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지키는 야구’를 뿌리내렸다.

이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자 삼성 프런트는 다시 한번 조직을 재편했다. 삼성에서 선수로 13년, 코치로 11년을 몸담은 류중일을 감독으로 올렸다. 김성래·강기웅·김용국·성준 등 삼성 출신 코치도 대거 영입했다. 스태프를 삼성(대구) 출신으로 구성하면서 장기적으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2011년 류중일의 승리는 곧 삼성의 쾌거였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삼성 야구단 프런트도 대대적으로 물갈이됐다. 김응용 사장이 물러나고 김인 사장 등 대구 출신 인사가 포진했다. 시즌 시작과 함께 대구구장에서는 ‘대구는 내 고향, 정다운 내 고향’이라는 가사의 ‘대구찬가’가 울려 퍼졌다.

이를 두고 세계적 기업인 삼성이 필요 이상으로 대구 안에 매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고집스럽게 대구를 노래했다. 외부에서 선수나 감독을 영입하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인재를 육성했다. 그러면서 좋은 성적을 냈고, 올 시즌 관중(50만8627명)도 지난해보다 12% 늘었다.

이전까지 대구의 가을은 고독과 회한의 범벅이었다. 82년 첫 한국시리즈에서 OB 김유동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패퇴한 것이 시작이었다. 84년 삼성은 OB보다 쉽다고 판단한 롯데를 한국시리즈 상대로 맞이하기 위해 롯데에 ‘져주기 경기’까지 했다. 계산대로 롯데를 만났지만 최동원이 혼자 4승을 따내는 기적 같은 역투를 펼치는 통에 삼성은 다시 무릎 꿇었다.

저주로까지 불렸던 84년 한국시리즈의 후유증은 오래 갔다. 삼성은 86·87·93년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해태에 졌다. 90년엔 LG, 2001년 두산에 챔피언을 내줬다. 정규시즌에선 최강이었지만 가을 무대에서는 번번이 울었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는 삼성이 야구에서만큼은 안 된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냉정히 말해 삼성의 이전 세 차례 우승은 외부의 힘(김응용·선동열 감독)을 빌려서 이뤄냈다. 그래서 김응용·선동열이 없어도 이길 수 있는 팀을 만들려 했다. 타격 위주의 팀을 투수력 위주로 재편했고, 이후에 다시 화끈한 공격력을 강조하며 투·타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삼성이 져주기 경기를 했을 때 난 대학생이었다. 경기를 보며 ‘저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삼성에 입단해서도 많은 실패를 보고 겪었다. 그러면서 삼성은 강해졌다. 올해는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힘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깨끗하고 재미있는 경기를 펼쳐 이기고 싶다. 대구 팬들과 우승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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