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돈으로 산 비싼 미술품 … 기업 총수 집에 거는 건 횡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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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00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담철곤(56·사진) 오리온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한창훈)는 20일 계열사 자금으로 해외 유명 작가의 고가 미술품 10점(140억원 상당)을 매입해 자택에 걸어둔 혐의(특경가법상 횡령) 등으로 기소된 담 회장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기업 총수가 회사 자금으로 산 그림을 집에 걸어둔 행위를 횡령죄로 처벌한 건 처음이다.

 재판부는 “회사 임원이 법인 자금으로 고가 미술품을 구입해 집에 둔 것을 횡령으로 인정하려면 개인 소유품처럼 소장하려는 의사가 있었어야 한다”며 “따라서 미술품 구입의 주목적, 구입 시 법인의 의사결정 과정, 미술품을 개인적으로 설치·보관한 기간, 구입 이후 미술품 관리 상황 등을 따져 횡령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의 경우 미술품 구입 당시부터 담 회장의 부인(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이 자택에 잘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 길게는 7년까지 집에 뒀다”며 “꼭 그림을 자택에 걸 사정도 없었고 세무조사 때는 회사 연수원으로 그림을 옮기는 등 위법성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횡령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담 회장은 미술품 구입 외에도 ▶포르셰 등 고급 승용차 여러 대를 회사 돈으로 리스해 이용하고 ▶계열사의 서울사무소 명목으로 지은 건물을 딸의 사진 스튜디오로 전용한 혐의도 인정됐다. 중국 자회사를 헐값에 팔아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단 13억6000만원의 배임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의 회장에겐 강한 윤리의식과 준법 경영에 관한 책임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담 회장이 지위와 부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외시장 개척을 추구하거나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논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옥색 미결수복 차림으로 40여 분의 선고 내내 양손을 맞잡고 있던 담 회장은 재판부의 ‘본말 전도’ 발언에 고개를 떨구었다.

 담 회장은 고가 미술품 등 226억원을 횡령하고 74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지난 6월 구속기소됐었다.

 재판부는 또 담 회장 등과 공모해 위장 계열사 인수를 통해 자금을 빼돌린 혐의(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된 조경민(53) 오리온 그룹 전략담당 사장에게 징역 2년6월을, 오리온 계열사가 판매 위탁한 미술품을 담보로 95억원을 대출받은 혐의(횡령) 등으로 구속기소된 서미갤러리 홍송원(58) 대표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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