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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애슬레틱스 야구단의 ‘스마트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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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대표이사

올해 프로야구 관중수가 처음으로 6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야구팬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실력으로 무장한 매니어들도 늘었다. 야구장에 가보면 경기진행 상황에 따라 나름의 작전을 펼치며 훈수를 두는 관중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아마추어 ‘감독’ 사이에서 가장 많은 논쟁거리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무사 1루 상황이다. 번트를 댈 것인가 강공으로 밀어붙일까 사이의 고민이다. 실제로 강공을 시도하다 병살타로 득점기회가 날아간 것을 두고 작전 실패를 성토하는 팬들도 많다.

 100여 년에 걸친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데이터 분석결과에 따르면, 무사 1루에서 득점 평균은 0.93이다. 희생번트를 했을 경우 수치는 0.75로 떨어진다. 그러나 박빙의 승부에서는 결과가 좀 다르다. 번트 없이 1점을 낼 확률은 0.4지만 번트를 시도했을 때는 0.417로 약간 높아진다.

 따라서 양 팀이 치열하게 맞서는 접전이 아니라면 무사 1루에서는 번트를 하지 않고 타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많은 야구팬이 믿어 왔던 상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방대한 데이터가 말해주는 결론은 분명하다.

 야구는 데이터 분석을 통한 확률게임이다. 이 같은 야구의 기본속성을 십분 활용해 메이저리그에서 새 역사를 쓴 팀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이다. 최고 부자팀으로 알려진 뉴욕 양키스에 비해 선수단 연봉이 3분의 1에 불과한 열악한 재정상태를 딛고 명문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단은 데이터 분석을 택했다.

 그 결과 흔히 득점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타율, 타점, 도루율보다 장타율과 출루율이 팀의 승률과 보다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상대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는 타자의 능력이 팀 승리에 큰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석 결과는 즉시 선수 스카우트에 활용됐다.

 선수의 지명도와 평판, 관계자의 주관적 평가 등 기존의 영입 관행을 배제하고 통계에 입각해 선수단 진용 짜기에 나선 구단은 2000년부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성공요인은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그에 입각한 과학적 팀 운영에 있었다.

 이는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더 이상 리더의 카리스마나 직관, 과학적 근거 없이 지속돼 온 관행에 의존하기보다 객관적 데이터 분석과 그에 기반한 통찰력을 중시하는 이른바 ‘스마트 경영’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가까운 예로 소매점의 경우를 보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소매점에서는 매출액 비중이 높은 상품에 더 넓은 공간을 배정하지만, 어떤 상품은 매대 면적과 상관없이 일정한 판매량을 유지하기도 한다. 축적된 경험을 어느 정도까지만 경영에 참고하고 만다는 얘기다.

 여기에 과학적 데이터 분석이 가미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상품별 매출액과 고객의 동선(動線) 등 축적된 데이터를 기초로 상품 구성과 진열, 상품별 매대 면적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한 수퍼마켓 체인은 과거 3년간의 매출 및 진열 데이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매장을 재구성한 결과 특별한 추가 투자 없이 매출을 크게 늘렸다.

 정보 분석과 활용의 힘은 병원 경영에서도 유효하다. 캐나다 오타와의 한 병원은 최근 환자 개인의 신상정보와 진료기록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진단 및 치료와 관련한 의사결정에 도입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질과 속도를 모두 향상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확산되면서 기업 내부 고객정보뿐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유통되는 사회적 데이터도 분석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아직은 초기단계지만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개인의 행동과 특성, 위치 정보는 특히 기업의 마케팅활동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이미 은행들은 대출신청자의 신용도를 판단하는 데 기존의 평가잣대 외에 사회적 네트워크상의 정보를 참고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의 쓰임새도 늘고 있다. 전기회사에서는 자료분석과 스마트 미터기를 통해 전기배송효율을 향상시키고 정전 방지 등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에 대비한다. 식품검사기관은 농장에서 식탁까지 육류 배송 기록을 면밀히 추적해 식품 안전성 검사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눈앞에 다가온 스마트 경영은 단순히 데이터 분석 기술을 채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 분석과 그에 기초한 통찰력을 경영 전반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실행력이야말로 무한경쟁시대에 대처하는 리더십의 과제다. 더 이상 데이터를 등한시하는 경영자가 설 자리는 없다.

이재술 딜로이트안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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