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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통일 앞당기는 TV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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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들끓게도 하고 숙연하게도 만드는 게 텔레비전이다. 근간의 TV는 마치 참았던 봇물 터뜨리듯 북한의 이모저모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평양의 여름을 리얼 타임으로 잡은 그림이 위성을 통해 비쳐지는가 하면, 북한가요 '반갑습니다' 와 '다시 만납시다' 가 쿨이나 god의 노래만큼이나 자주 흘러 나온다. 금방이라도 휴전선의 철책이 풀릴 것 같은 분위기다.

〈KBS 일요스페셜〉 을 통해 방송된 '평양아이들의 서울나들이' 는 분단 55년만에 찾은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서울 체류 6박 7일의 기록이었다.

그 밝고 화사한 친선의 꽃사절 일행 누구에게서도 얼마전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비춰진 비운의 꽃제비를 연상할 수는 없었다. 같은 땅 한쪽에선 굶어죽지 않으려고 강을 건너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또 한쪽에선 곱게 꽃단장하고 춤추는 어린이가 있는 게 우리 세상 사는 풍경이다.

연출의 방향에 따라 카메라는 때때로 춤추기도, 비틀거리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민족통일음악회〉공연을 위해 방문한 평양에서 내가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북한사람들은 주로 호텔 식당이나 공연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에게선 뜻밖에도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하나는 수줍음이고 하나는 명랑함이었다. 명랑성은 어느 정도 훈련받을 수 있지만 수줍음은 결코 훈련으로 얻어낼 수 없다.

이번에 서울에 온 소년예술단의 말과 태도, 웃음과 눈물에서도 그동안 TV를 통해 질리게 보아 왔던 경직과 전투성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들에게선 '인간'이 느껴졌다.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를 통해서 보는 북한의 뉴스캐스터는 좀 격한 느낌을 주는 반면 가수들이 노래할 때 모습은 지나치게 부드럽다.

남쪽은 그 반대다. 노래는 거칠게 하고 뉴스는 간지럽게 한다. 대중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의 존중이다.

특이하다고 받아들이면 되지 우스꽝스럽다고 몰아칠 일은 결코 아니다. 솔직히 일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북한을 묘사 혹은 모사하는 방식은 안타깝다 못해 민망할 때가 있다.

웃음과 비웃음은 극과 극이다. 야유와 풍자는 권력자를 향해 겨누는 게 제격인데 지금 북한은 야유받을 처지에 있지 않다.

살면서 자존심이 필요할 때 너그럽고 포용력이 필요할 때 오히려 주체성을 내세우는 경우를 흔하게 보는데 지혜로운 처세는 자존심과 포용력이 상황에 따라 아름답게 펼쳐지는 모습이다.

통일은 똑같아지는 게 아니다. 통일은 모든 꽃들이 제각기 아름답게 피는 것이다. 줄줄이 똑같은 꽃들만 핀 뜰을 생각해 보라. 숨막히지 않는가.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자" 는 의견에 동의하고 실천하는 게 통일이다. 음식점에 들어가 "자장면으로 통일합시다" 라며 속도전을 치르는 차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생소년예술단의 리허설 장면에서 북측 책임자는 "우리 공연이 통일하는 데 이바지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TV 역시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고 가로막을 수도 있다.

평양의 거리마다 눈에 띄는 구호가 많았는데 그 중 인상적인 게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였다. 통일의 길에 TV도 즐거운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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