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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을 말한다]이소영 연출 '마농레스코'

중앙일보

입력

마농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여인이다. 그녀는 감추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 준다.

아무런 의심 없이 시키는 대로 따랐던 어린 시절, 사랑을 좇아 순수함을 소비해 버린 청춘, 어떻게든 편안하게 살아 보려고 삶이 제공하는 공허함 속에서 발버둥쳐보는 지금….

결국 한 남자의 헌신적인 품안에서 최후를 맞는 그녀의 삶은 나에게도 가능한 것이라는 동질감이 스며든다. 무대 위에 그녀를 세우려다보니 나 자신이 벌거벗은 느낌이다.

무대에 오르는 마농은 푸치니 작곡의 오페라다. 1888년 오페라 마농으로 대성공을 거둔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와 달리 푸치니는 마농이란 인물 자체가 관객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믿으며 절망적인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적이면서도 극적인 측면에 주력한 작품을 내놓았다.

1893년 이탈리아 토리노 테아트로 레지오에서 초연했을 때 작곡자는 커튼콜로 30회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고 관객들은 제1막 데그뤼의 아리아 '당신들 같이 아름다운 여인 중에 (tra voi belle)'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극장 문을 나섰다고 한다.

초연으로부터 1백년이 더 지난 지금 마농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가 고민거리였다. 나는 무대는 간단 명료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을 해답으로 삼았다. 꼭 필요한 부분은 집중 조명하고 다른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는 '선택적 사실주의'다. 막이 내릴 때마다 일단 강렬한 이미지의 그림을 제시해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1막은 경쾌한 분위기다. 학생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 데그뤼가 등장하므로 경쾌하면서도 낭만적으로 꾸몄다.

마농이 타고 오는 마차 대신 광장의 핵심 구조물인 긴 계단을 강렬한 빛으로 부각시켰다.

2막은 온통 청색과 은색으로 뒤덮인 화려함이다. 보석으로 치장된 이면에 감추어진 마농의 무력감에 젖은 차가운 삶을 나타낸다. 병사들이 마농을 덮쳐 체포할 때 이런 생활이 흔들리듯이 커튼으로 처리된 벽이 젖혀진다.

3막은 이번 무대 개념의 출발점이다. 항구의 모습, 긴 항해를 준비하는 선박, 감옥들을 모두 생략하고 새벽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여 배로 오르는 철제 다리만 무대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듯 공중에 띄운다.

등장 인물과 죄수들의 공간을 분리하면서 마농과 데그뤼의 애절한 이별, 다리위로 뛰어 올라 마농을 구하려는 데그뤼의 극적인 행동,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다리 끝의 방향감에 주목한 까닭이다.

4막은 배경과 바닥을 모두 광목으로 처리했다. 조명으로 현실과 환상을 드나드는 마농의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이 죽음 장면 묘사다.

홀로 힘없이 일어서는 데그뤼가 마농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빛을 받아 그의 그림자가 시체 위에 드리우도록 처리했다. 푸치니 음악의 내면적인 핵심에 충실하면서 통일된 이미지를 부각한 것이 이번 무대의 연출 의도다.

8~11일 오후 7시30분(토 오후 3시, 7시. 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586-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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