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부자거래 단죄하는 미국, 한국 법원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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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이 지난 13일 헤지펀드의 거물 라즈 라자라트남에게 징역 11년을 선고해 화제다. 징역 11년은 미국 사법 사상 내부자거래(內部者去來, insider trading) 피고인에게 내린 최고의 형량이다. 벌금 1000만 달러(약 115억원)와 부당이익금 5380만 달러의 몰수도 명령했다. 판결문은 “내부자거래는 민주사회의 자유시장에 대한 도전이자 미국 기업문화에서 뿌리 뽑아야 할 바이러스”라고 적시했다. 내부자거래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법원의 단죄 의지가 신선하다.

 ‘라자라트남 사건’은 미국에서 두 가지 관점에서 관심거리다. 라자라트남이 보여준 성공과 몰락의 인생역정이 첫 번째다. 스리랑카 출신으로 명문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70억 달러를 굴리는 헤지펀드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던 입지전적 인물이다. 골드먼삭스·구글·IBM·힐튼 등 기업의 내부자 정보를 얻어 7000만 달러의 부당이익을 챙긴 사실이 들통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두 번째로 형량이다. 검찰은 당초 24년5개월~19년의 징역형을 구형(求刑)했다. 살인죄 23년, 유괴 14년 등 미국 형사범죄의 평균 형량보다 높은 것이라고 한다. 법원은 형량을 낮췄지만 ‘실형 11년’은 내부자거래에서 새로운 판례를 만든 셈이다.

 미국 법원은 전통적으로 화이트칼라의 경제범죄에 대해 가혹하다. 2009년 다단계 금융사기(폰지사기)를 벌인 버나드 베이도프 전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에게 징역 150년이 선고됐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엔론의 제프린 스칼링 전 회장과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 전 CEO는 각각 24년과 2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부패한 기업가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시장에서 정보는 돈이다. 공개되지 않은 회사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파는 내부자거래는 반칙이자 범죄 행위다.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애꿎은 개인투자자들만 손해 볼 공산이 크다. 현행 자본시장법이 내부자거래에 대해 부당차익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가중처벌하는 이유다. 하지만 실제로 중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징역형이라 해도 2~3년형이 고작이고, 집행유예로 풀려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에도 주가 조작과 미공개 정보를 통해 165억원의 부당 이득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L그룹의 인척이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검찰 기소 단계에서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하며 요란법석을 떨다가도 법원에 가면 흐지부지되는 사례를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 왔다.

 이러니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진다. 법원의 관용주의와 솜방망이 처벌이 내부자거래를 기승부리게 하는 원인일 수 있다. 법정 최고 수준으로 중형을 내린다면 최소한 줄일 수는 있다. 없는 자와 순진한 개미들을 위한 경제 정의 차원에서라도 내부거래는 뿌리 뽑아야 한다. 사회적 부정행위에 대한 엄정한 죗값을 매기는 미국 법원의 위엄을 우리 법원은 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