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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딸 위한다고 가담했지만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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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성경모(31·사진)씨는 프로축구 선수였다. 광주FC의 주전 골키퍼. 그의 커리어는 올 한 해 K-리그를 흔든 승부조작에 연루돼 일찌감치 끝났다. 이제 그는 산에 오른다. 장애우와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달팽이 원정대’의 일원이 되어 15일 히말라야로 출발한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돌아올 참이다. 한때 삶을 짓눌렀던 절망까지도.

 큰 잘못을 했다. 지난 4월 6일에 열린 부산과의 컵대회 경기를 져주기로 하고 2000만원을 받았다. 후배(정종관·사망)의 부탁이라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성경모씨는 13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첫 딸의 탄생을 눈앞에 둔 시기에 ‘아이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할 것’이란 후배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면서 “당시엔 딸을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말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검거돼 교도소에 갇힌 뒤에는 깊은 불안감과 좌절감에 시달렸다. 수감 기간 중 정종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죄책감은 더욱 컸다. 약 3개월의 구속 기간 중 처음 한 달 동안은 줄곧 죽음만을 떠올렸다.

 형을 선고받은 뒤에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에 사회봉사 300시간이 구형됐다.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 통보를 받았지만 이미 마음을 비운 뒤여서 충격은 덜했다. 그저 동료와 팬, 그리고 아내와 갓 태어난 딸에게 용서를 구할 방법만을 생각했다.

 승부조작 선수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자청한 곽균열 변호사는 최근 성경모씨에게 히말라야 등반을 권했다. 성씨는 길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300만원이 넘는 돈이 들고 사회봉사 시간에 포함되지도 않는 여행이다. 그러나 잘못을 씻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성경모씨는 “학교로 치면 나는 퇴학생이다. 하지만 후배들만큼은 온전히 졸업했으면 좋겠다”면서 “히말라야에 다녀온 뒤 승부조작 예방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하겠다. K-리그를 더럽힌 장본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싶다”고 다짐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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