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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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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진홍
논설위원

# 앉았다 일어나면 앉은 자리에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푹신한 소파는 그 사람의 몸무게와 엉덩이 크기에 비례해서 자국을 남기고 딱딱한 나무의자나 지하철의 금속성 재질 의자에도 체취와 온기(溫氣)가 씻을 수 없는 흔적처럼 남는다. 어디 앉은 자리만 그렇겠는가? 삶의 곳곳은 흔적으로 넘쳐난다. 아니 삶 자체가 흔적을 남기고 지우고 다시 남기는 것의 연속일지 모른다. 그래서 삶의 켜켜이 쌓인 두께는 곧 흔적의 무게다.

 # 2008년 8월로 기억한다. 도쿄 미드타운의 ‘21-21 디자인사이트’에서 마주했던 아사바 가쓰미(淺葉克己)의 ‘흔적(痕迹)’전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벽면 가득 편지봉투들이 가로세로로 줄을 지어 펼쳐져 있었다. 수십 년 전 주고받은 빛 바랜 편지봉투부터 최근의 안부를 주고받았을 편지봉투까지 그것들은 말없이 그리움과 애절함의 흔적을 웅변하고 있었다. 4년 전 징하게 무더웠던 여름에 도쿄에서 봤던 그 전시는 어느새 내 삶에 또 하나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 지난 주말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펼쳐진 침묵의 연극 ‘모래의 정거장’은 고(故) 오타 쇼고(太田省五)의 ‘물의 정거장’ ‘바람의 정거장’에 이은 이른바 정거장 3부작 중 하나다. 인생은 어차피 정거장이다. 물의 정거장이든 바람의 정거장이든 모래의 정거장이든 인생은 결코 영원히 거기 머물지 않는다.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고 모래처럼 흩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흔적은 남는다. 결국 흔적이란 존재가 삶에 그리는 덤덤한 지도 같은 것!

 # 해도 뜨기 전인 새벽에 길거리에 나서면 환경미화원들은 어제의 흔적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다. 호텔에서 일하는 메이드 역시 낯선 이방인의 흔적을 치우고 새로운 이방인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하루를 보낸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에게 지나온 삶의 흔적들은 그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가혹한 검증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어쩌면 어제의 흔적을 말끔히 치우는 환경미화원과 호텔 메이드가 부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흔적은 남기기는 쉬울지 몰라도 지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감추고 싶은 흔적은 더욱 그렇다. 참으로 두려운 흔적이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결국 산다는 것은 저마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다름 아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미모로, 지식으로, 재주로 저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사라지며 모래처럼 흩어지기 일쑤다. 그러나 누군가를 울린 감동의 흔적은 문신처럼 짙게 새겨진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남고 영혼에 담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바람에 실려, 빗줄기를 타고, 햇살을 따라 떠오르다 사라진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 누구나 어릴 적 모래성을 쌓고 허물었던 기억이 있으리라. 아무리 정성 들여 쌓은 모래성이어도 해가 저물면 그대로 놔둔 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어쩌면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 남는 것은 흔적뿐. 오늘 내가 남기는 흔적이 곧 나의 역사다. 동시에 나의 미래다. 훗날 가서 그 흔적이 마땅치 않아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우기 어렵다. 아니 지워지지 않는다. 멋대로 개칠할 수도 없다. 삶의 흔적은 그만큼 냉정하다.

 # 미래의 누군가가 오늘 나의 흔적을 수사관이 범인의 지문 찾듯 찾아낼지 모른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아무리 덮고 가리고 지우려 해도 남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흔적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삶에 ‘흔적이란 분필’로 움직임의 선을 그린다. 그것이 내 인생의 지도다. 인생은 흔적이다. 삶이 힘들고 치열할수록 흔적도 깊다. 오늘도 나는 흔적을 남긴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과연 나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