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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전성기 끝나 … 자본주의 대안 생명에서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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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충북 괴산군 양곡리 논엔 올해 커다란 토끼가 등장했다. 토끼 두 마리가 절구를 찧는 대형 그림 아래에 ‘청정 괴산’이란 홍보 문구가 적혀 있다. 일반 벼 사이에 흑미를 심어 색깔을 낸 ‘논 그림’이다. 괴산군은 2008년 논 그림을 처음 도입해 “벼 농사를 예술의 수준으로 올렸다”는 칭찬을 받았다. 지금은 벼를 키워 돈을 벌 뿐 아니라 고장 홍보도 하고 관광 수입도 올리는 1석3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벌의 독침 성분을 활용해 여드름 전용 화장품을 개발했다. 봉독이라고 불리는 이 성분은 항균 작용이 탁월하다.

이를 얼굴에 뿌리면 여드름균의 증식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이 제품은 한 화장품 회사에서 대중화시켜 인기 상품이 됐다. 꿀을 생산하는 데만 쓰인다고 생각한 꿀벌이 새로운 돈벌이 수단이 된 것이다.

민승규 농진청장
 이어령 본지 고문이 꼽는 대표적인 ‘생명자본주의’ 사례다. 이 고문은 14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리는 심포지엄 ‘생명자본주의와 농업의 새로운 가치’에서 이런 사례를 소개할 계획이다. 이 심포지엄은 이 고문이 위원장으로 있는 생명자본주의포럼과 농촌진흥청이 함께 주최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농업이 어떻게 생명자본주의 정신에 입각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다. 생명자본주의는 정보기술(IT)·의학·교육·레저 산업 등에 다양하게 접목되는데, 이번엔 농업 분야에서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이 고문은 이날 강연에서 “생명에 답이 있다”는 생명자본주의의 정신을 역설할 계획이다. 특히 3년 동안 생화를 감상할 수 있는 ‘보존화(Preserved Flower)’ 가공 기술, 흙 없이 인공 자연에서 배추와 상추를 키우는 기술 등에 주목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생명의 또 다른 가치를 끌어낸 사례”라는 것이다. 해외 유명 해수욕장을 재현한 온천을 산촌에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해수욕장처럼 모래를 깔아 놓고 프랑스 니스 해수욕장의 정경을 3D 영상으로 보여주면 어떻겠어요. 바람 소리도 들리고, 바다 냄새도 나게 하고요. 아날로그와 가상 현실의 결합, 바로 이런 상상력이 있으면 산골 온천도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를 언급하며 생명자본주의 등장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예전엔 나무를 베어야 자본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나무를 키우기만 해도 훌륭한 관광 자본이 되는 시대”라며 “경쟁이 지배하던 과거의 자본주의 대신 감동을 원천으로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민승규 농촌진흥청장이 참석해 ‘생명의 경쟁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농업’이라는 주제로 발표한다. 민 청장은 이 발표에서 ‘3차 농업혁명’을 강조할 계획이다. 1차 농업혁명은 여러 작물을 돌려 심는 윤작법으로 생산성을 높였다. 2차 농업혁명은 화학비료와 품종 개발로 비약적 생산량 증대를 일으켰다. 그가 주장하는 3차 농업혁명은 융합과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명이다. 민 청장은 “농업은 농산물뿐 아니라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생명기술(BT)·IT와 결합해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행사에는 생명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도 참여한다. 전남 광양시 도사리에서 청매실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홍쌍리 대표는 친환경 매실 농사가 매실 가공식품 제조업에서 매실마을 관광업 등으로 확장된 사연을 소개한다. 홍 대표는 “매화를 딸, 매실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기르다 보니 지금은 6만 평 규모의 농장을 일구게 됐다”며 “가공식품과 체험 관광 수익 등으로 한 해 4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다”고 설명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서 ‘다알리아한우농장’을 하는 이종범 대표는 한우 우리 앞에 야생화 꽃밭을 만든 사연을 소개한다. 그는 “처음엔 아내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야생화를 심었는데, 꽃을 본 소들도 기분이 좋아져 육질이 좋아졌다”며 “이후 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인근 초등학생을 불러 꽃 그림대회까지 열며 명물 농장으로 거듭났다”고 자랑했다.

임미진 기자

◆생명자본주의(Vita Capitalism)=생명이 생산과 창조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 2009년 처음 만든 개념이다. 이 고문은 올 3월 자신이 위원장을 맡은 생명자본주의포럼을 창립하며 “자본주의라는 배에 물이 들어오고 있다. 차가운 금융자본주의에서 생명자본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산업자본주의·금융자본주의에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본주의가 삶의 수단을 얻기 위한 자본주의였다면 생명자본주의는 삶의 목적, 즉 행복을 얻기 위한 자본주의다. 이 고문은 “의료·교육·문화·양육 같이 생명을 키워내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생명자본주의에선 물품이 아니라 공간과 감동이 상품이 된다. 세계인을 감동시킨 한류 문화 콘텐트가 대표적인 예다. 이 고문은 “ 경제 영역에서 버려졌던 문화·인류학적 요소를 끄집어내 자본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이 제시하는 농업 분야 생명자본주의 사례

▶김포평야의 논을 캔버스로

- 색색의 벼를 심어 평야 전체를 캔버스로 만들면 벼농사 외에 관광수익도 얻을 수 있어

-농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발상의 전환

▶산골 찜질방에 가상 해수욕장을

- 산골 찜질방에 3D 가상 영상으로 프랑스 니스 해수욕장의 정경을 비춰 준다면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감동과 가치를 생산

▶꿀벌의 독침을 이용한 화장품

- 꿀벌의 꿀만 활용했던 과거와 달리 독침 속 성분을 활용한 화장품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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