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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술지 논문이 지문으로 … 수시 논술, 본고사 뺨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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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N고 3학년 김모(18)군은 지난 1일 치른 연세대(자연계) 수시전형 수리논술 시험에서 두 시간 반 동안 네 문제 중 두 개밖에 못 풀었다. 함수의 최대값, 집합의 범위 등을 구하는 문제가 출제됐는데 두 문제는 손도 못 댄 것. 김군의 평소 모의고사 성적은 전국 상위 1% 이내. 그는 “과거 본고사 수학 문제 같았다”며 “그동안 풀었던 수리논술 문제 중 가장 어려워 한 문제도 못 푼 학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실시된 이화여대 논술에서는 미국 사회학 저널에 실린 외국 학자의 논문이 지문으로 나왔다. 이 지문을 읽고 전 세계적으로 표준시간을 설정해야 이유를 묻는 문제였다. 시험을 치른 한 고3 수험생은 “영어 지문 해석하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며 “논술시험에 어려운 영어 지문이 나와 매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올해 수시 모집에서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어려운 논술 문제를 출제해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정답을 요구하는 수학·과학 문제,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담겨 있는 지문, 영어 지문 문제들이 속출한 것이다.

 사상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건국대는 지난 8일 논술 전형(인문계)에서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명품 브랜드의 소비 행태를 분석하는 문제를 냈다. ‘아비투스’는 구조화된 사회적 의식 또는 습관을 뜻하는 말로 프랑스의 유명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창한 사회학 이론이다.

 건국대 관계자는 “경쟁률이 높아 논술을 어렵게 출제해야만 학생을 선발하는 데 어려움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특히 수능이 올해 쉽게 출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학이 논술에 변별력을 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능 영역별 만점자가 응시 인원의 1%가 나오는 상황에서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 성적만으로는 선발이 어렵다는 것.

 이화여대가 영어 지문 문제를 논술에서 출제한 데다 서울시립대·숭실대 등도 모의고사를 통해 영어 문제를 선보였다. 논술에서 영어 지문은 2009학년도 이전 대입에서는 정부에 의해 본고사로 규정돼 출제 금지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미 경희대·동국대·한국외대 등이 영어 지문 문제를 냈으며, 올해는 출제 대학 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대학들은 논술로 뽑는 인원을 지난해에 비해 줄이는 등 논술 비중을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예를 들어 건국대는 논술 비중을 축소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에 따라 논술우수자전형의 모집 인원을 지난해 500명에서 381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정작 시험은 어렵게 출제한 것이다.

 이런 여파로 수시 모집 논술 대비를 위해 사교육 업체를 찾는 수험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교과부가 논술 비중을 낮춰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현실은 거꾸로 나타나고 있다.

 이만기 중앙유웨이 평가이사는 “정부가 사교육을 잡기 위해 논술 100% 전형을 없애라고 했지만 오히려 논술학원은 매우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논술은 채점하기 쉽도록 정답이 있는 문제를 내는데, 자연계 논술은 거의 수학 시험이 돼버려 학원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논술, 적성고사 등 대학별 전형 일정이 특정일에 몰려 있어 이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들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논술을 보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 많게는 대학 8곳이 동시에 논술 또는 적성 고사를 치를 예정이다.

윤석만·김민상 기자

“제시문 출제 성향

기출 문제 분석하라”

어려운 논술 대비 이렇게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0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수험생들은 논술 준비에 매달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수능 직후인 12일부터 경희대·서강대·성균관대 등이 논술고사를 치러 논술 대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능이 쉽게 출제돼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한 수험생이 많아지면 논술 변별력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어 수험생 부담도 크다.

 연세대·건국대 등 논술시험이 어렵게 출제돼 수능 이후 논술고사도 난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최상위권 학생들은 수능이 쉽게 나오더라도 논술에서 고난도 문제에 익숙해져야 한다. 신동원 휘문고 교사는 “올해 아무리 수능이 쉽게 출제된다고 하더라도 만점을 맞겠다는 각오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논술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학별 논술 출제 경향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최윤상 대원외고 교사는 “영어 제시문을 출제하는지, 답안 분량이 어떻게 되는지 등 출제 성향은 대학별 기출 문제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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