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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간판 달고 되겠나 총선 때 무소속 출마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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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공천이면 부지깽이도 당선된다던건 흘러간 옛말입니다.”
이성권(한나라당) 전 의원은 “부산 분위기가 영 달라졌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지난 6월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에서 물러난 뒤 내년 총선 준비차 부산에서 사무실을 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부산진을)로 당선됐다가 18대 때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졌다.

17대 때만 해도 정치 신인인 그에게 지역구 당원들은 “공천만 받아 오면 경기는 끝”이라고 했다. 실제로 공천자가 되니 선거를 치르기 전인데도 국회의원 대접을 받았다. 낙천한 18대 때는 출마조차 못 했다. 하지만 이젠 당원들이 “공천보다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는 당원도 많다. 이 전 의원은 “오죽하면 청와대 출신인 나에게 무소속을 생각해보라는 말이 나오겠나”고 반문했다.

26일 구청장 재선거를 앞둔 부산시 동구를 찾아 시민들을 만났더니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이 원색적이었다. 동구청 입구 재래시장인 수정시장의 60대 상인은 “이렇게 낙후된 시장을 대한민국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나”라며 “20년간 줄기차게 한나라당만 찍은 결과가 고작 이 모양”이라고 흥분했다. 시장 통로에 지붕 설치공사를 할 예산이 없어 비만 오면 시장 바닥이 흙탕길이 된다는 것이다.

곁에 있던 50대 여성이 “며칠 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빨간 넥타이를 매고 우리 시장에 왔는데 좋은 소리 못 들었다”고 거들었다. 지난달 29일 이명박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지역 현안을 대통령 임기 내에 모두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엔 홍 대표가 부산을 방문해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60대 상인은 “대통령은 안 된다 그러고 여당 대표는 또 해 보겠다고 하는데 부산시민 상대로 장난치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한다”며 얼굴이 벌게졌다.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준 부산 유권자들의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급속하게 확산됐다. 최근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부산·경남(PK) 지역 유권자 가운데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비율은 30.8%였다. 무소속 지지는 25.0%, 야권 지지는 19.8%였다. 역대 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한나라당으로선 초라한 수치다.

이철순 부산대 교수는 “과거 20년간 한나라당에 맹목적 지지를 보냈지만 지역 개발은 계속 수도권에 비해 밀려 왔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한나라당 이반의 근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영호남 대립의 지역주의가 완화되고 수도권에 대한 반발심리가 나타나고 있다”며 “동남권 신공항 무산의 배경도 인천공항의 위상 분산을 원치 않는 수도권에 밀린 것으로 보는 경향이 부산 지역에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됐고 ‘잘나가는’ 대구·경북(TK)과 비교할 때 소외감도 커졌다.

야권은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의 18개 지역구 중 최소한 다섯 곳 이상에서 승리할 것으로 장담한다. 현재는 한 석에 불과하다. 여야가 동구청장 재선거에 총력전을 펴는 것은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전초전의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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